경기 부양 무드가 확 달아오르고 있다. 총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이명박 정부는 감세, 재정 지출, 금리 인하 등 부양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다.
경제를 살려 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에 이론이 있을 수는 없다. 문제는 타이밍과 정책 수단이다. 자칫 부적절한 시점에 무리한 정책 수단으로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 더 큰 화를 부메랑으로 부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김영삼(YS) 정부의 ‘신경제 100일 계획’의 실패다. 정권 초기 무리한 경기 부양의 전형적 사례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YS정부와 MB정부의 정책 방향이 너무 닮아 있다”고 했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경제 상황과 펀더멘털은 판이하다지만, 자칫 YS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경제 상황에 대한 좀 더 냉철한 판단, 이를 토대로 한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진단한다.
15년 전,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새 정부의 경제 개혁 작업의 성패가 첫 100일 안에 결정된다는 판단 아래 각종 경기 활성화 대책을 담았다.
YS 정부는 ▦경기 활성화 ▦중소기업 구조개선 ▦기술개발 촉진 ▦기업활동 자율성 제고 ▦기본 생필품 가격 안정 ▦공직자 의식 개혁 등 7대 과제를 목표로 선정했다. 어느 과제 하나 MB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다르지 않다.
출범 초 얼어붙은 경기를 녹이겠다며 1순위로 경기 활성화를 놓은 만큼 세부 정책도 온통 경기 부양 일색이었다. 금리를 내렸고, 금융 규제를 상당폭 완화했고, 재정 지출도 대폭 확대했다.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겠다며 각종 인ㆍ허가 등 진입 규제를 풀었고, 공장의 입지기준을 완화하고 설립 절차도 간소화했다. 심지어 경기 부양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물가 안정을 위해 30개 기본 생활필수품을 정해 정부가 가격을 특별관리하고,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요금을 연말까지 동결하는 내용까지 MB 정부 대책과 꼭 닮아 있다.
하지만 YS 정부가 출범하던 93년 무렵은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던 시점. 상승하던 경기에 불을 지피면서 거품을 키웠고, 기업들의 차입 확대는 금융기관들의 대형 부실로 이어졌다. 그 끝은 환란이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당시 한 기고에서 “집을 지을 때는 땅 고르기 작업부터 시작하여 주춧돌을 놓는 것이 순리”라며 “첫해에 경기 부양을 하고 다음해부터 제도 개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현실 인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당시와 단순 비교하긴 무리다. 경기 부양이 필요한 시점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도 엇갈린다. 이 대통령의 주장처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추경 편성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 등 극단적인 수단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는 게 공통된 진단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우리의 잠재성장률이 4%대 중후반이라고 본다면 우리 경제가 거시적 수단을 동원할 만큼 침체라고 볼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금리나 환율, 재정 등 거시 정책을 동원할 경우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을 확대시키고 물가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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