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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접시에 담은 국물

입력
2008.04.2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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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글은 모르지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끼니 걱정을 안 해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진 사람이 있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됐으니 건강을 챙길 여유도 생겼다. 식자를 찾아가 물었더니 고침단명(高枕短命), 식후칠보행(食後七步行) 두 가지를 실천하라고 일러 주었다. 베개를 높이 베면 단명하니 낮게 벨 것이며, 식사 후에는 반드시 일곱 걸음이상을 걸으라는 뜻이었다.

한자를 깨치지 못한 그는 식사 후마다 ‘식기 행깃보(행주의 전라도사투리)’라며 일곱 걸음 이상을 걸었고, 밤에는 ‘고추 닷말’하며 베개를 낫게 베고 잤는데 정말로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고 한다. 글 모르는 사람을 비하하는, 좀 썰렁한 우스갯소리지만 말이야 어떻든 실질적인 행동을 하면 이롭다는 통찰도 담겨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 중 북한에 남북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문득 이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북한이 질색하는 인권문제를 공공연히 거론하고, 북한의 협박에 굴복해 대화하지는 않겠다는 등 북한을 향해 강경한 말들을 쏟아내 온 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이 제안은 실질적인 대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사표시다.

‘남북 최고 책임자의 말을 직접 전할 수 있는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연락사무소장으로 앉히자는 데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통하겠다는 강한 의욕이 감지된다. 하다 말다 하고, 효율성도 떨어지는 기존 회담 방식이 아니라 상설사무소를 통해 화끈하게 가슴에 있는 얘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실질과 실용을 좋아하는 이 대통령답다.

■ 남북연락사무소 제의에 담긴 뜻

그러나 많은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속 깊은 뜻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여우가 학을 초대해 놓고 넓은 접시에 맛있는 국물을 담아 내놓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빨대를 준비하고 초대에 응할 만큼 융통성이 있는 인물이 아니다.

핵을 폐기하고 개혁 개방하면 10년 내에 북한 주민소득이 3,000달러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비핵 개방 3000’. “식량지원은 인도적 문제로 다뤄야 한다”면서도 먼저 북한의 요청이 있어야 검토한다는 이 대통령의 대북 식량지원 방침. 이 모두 김 위원장에게는 ‘접시에 담은 국물’일 뿐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버릇만 나쁘게 들게 했다고 비판해왔고 취임 후 그 연장선상에서 전 정부들과는 180도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것인데 남한에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김정일 정권이 자세를 낮춰 적응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인가. 김정일 정권이 그 정도로 유연하고 실용적이라면 지금 저 모양일까. 식량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도 끊고 압박하면 결국 북한 정권도 굴복하게 될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연 그럴까.

굶주리고 굶어죽는 것은 불쌍한 북한 주민들뿐이다. 그것이 가슴 아프고 두려워 남한에 아쉬운 소리할 김정일 정권이 아니다. 스마트 폭탄처럼 독재집단에게만 정확하게 응징 효과를 내는 ‘스마트 제재’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독재자들의 주민탄압에 대한 ‘정당한 분노’에서 비롯된 제재가 탄압 받는 바로 그 주민들의 고통과 희생을 부른다는 것은 비극이다.

■ 북한 변화 이끌어 낼 실용적 지혜

이 대통령은 방미 중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핵 인권 등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미간 공조를 굳게 다지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을 ‘역도’(逆徒)라고 부르며 전국적으로 규탄집회를 갖고 있는 북한을 달라지게 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도 그렇지만 남한의 연미압북(聯美壓北)도 지금의 경색 상황을 풀어가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자존심과 기 싸움의 어리석은 판을 거두고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권의 성격상 넒은 접시에 국물을 담아 내놓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손님에게 빨대를 슬며시 쥐어주는 것이 창조적 실용주의가 아닐까. 꽃잎 흩날리며 가는 봄날, 주린 배를 움켜쥐고 힘들어 할 북한 주민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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