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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 4·29 흑인 폭동 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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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4> 4·29 흑인 폭동 앞과 뒤

입력
2008.04.23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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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29 폭동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직접적인 도화선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한인 교포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자연히 이 사건은 우리 동포들에게 미국사회의 현실에 새삼 눈을 뜨게 하는 교훈을 가져다 주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많은 미국 언론들은 마치 한인 상인들과 흑인 고객들 간에 오래 쌓인 갈등이 표면화한 것처럼 보도했다. 물론 전혀 근거 없는 허위보도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오랜 갈등이자 미국 내 뿌리깊은 인종차별이지, 한인과 흑인들 간의 갈등은 결코 아니다.

4ㆍ29 폭동은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을 백인 경찰들이 마구 때린 것이 직접적인 발단이었다. 마침 이 장면을 인근 길 건너에 살던 사람이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이 사람도 흑인이었다. 텔레비전 방송사에 넘겨져 전국에 방영된 이 비디오에는 현장의 모습만 찍혔을 뿐 경찰과 로드니 킹 사이의 대화는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백인 경찰 3명 중 2명이 로드니 킹을 심하게 때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명확하게 잡혔고, 현장 책임자로 보이는 경찰관이 구타가 벌어지는 장면을 못 본척한 채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무언가를 마시는 장면은 그야말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인권의 파수꾼이어야 할 경찰이 이처럼 끔찍스레 시민을 두들겨 패는 장면에 세상이 경악했다. 더욱이 때린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인 경찰이고 맞은 사람은 흑인이었기 때문에 특히 흑인 커뮤니티의 분노와 동요가 심했다.

로드니 킹 구타 사건은 결국 형사고발로 이어져 현장에 있던 3명의 경찰관이 법정에 서게 됐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3명 모두 무죄판결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판결은 4월 29일 오전 11시께 있었다.

무죄판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로스앤젤레스 남부의 흑인 커뮤니티가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혹시라도 불상사가 일어날까 우려해 대비에 나섰지만 무죄판결의 파장은 빠른 속도로 로스앤젤레스 남쪽에서부터 퍼져나갔다.

흑인들은 곳곳에서 지나가는 백인을 차에서 끌어내려 집단 구타를 하고 차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첫 피해자는 레지널드 데니라는 평범한 백인이었다. 데니는 물건 배달 도중 영문도 모른 채 흑인들로부터 무자비하게 몰매를 맞았다.

마침 이 장면은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기자들의 생중계로 수백만 시민들이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데니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지만, 이 일은 4ㆍ29 흑인 폭동의 심각함을 적나라하게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문제는 경찰이 어디 있었느냐다. 폭도들이 한 시간 동안 행인을 구타하고 인근 가게에 들어가 마구잡이로 약탈을 벌이는 동안 경찰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사건현장 상공을 선회하던 헬리콥터에 타고 취재에 나섰던 기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도대체 경찰들은 어디 있느냐. 어째서 한 명도 안 보이는가” 라며 외쳐대는 장면이 보도됐다.

결국은 저만치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경찰의 대열이 보였고, 아마도 경찰국장의 명령을 기다리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우리가 종종 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경찰은 민첩하고 용감한 민중의 보호자이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상 최대의 폭동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한 시간 넘게 출동하지 않고 있는 무능한 집단이었다.

그 당시 로스앤젤레스시 경찰국장은 밥 게이츠, 시장은 흑인인 톰 브래들리였다. 둘은 세상이 알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게이츠 국장은 같은 경찰 출신인 브래들리 시장의 미온적인 범죄 대처를 비판하면서 차기 시장직 도전을 공언하고 있었다.

시 헌장에 따르면 시장이 경찰국장을 파면하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또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시장이 옷을 벗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시장이 주동이 돼 시장에게 경찰국장 파면권을 주자는 시 헌장 개정안을 주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 이는 뜨거운 감자였다. 경찰의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고, 게이츠 경찰국장 역시 강력히 반대했다.

이런 와중에 폭동이 일어난 바로 그 날, 경찰국장은 시 헌장 개정 반대 모금운동 파티에 참석하러 가던 중이었다. 그는 폭동이 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경찰본부로 돌아가지 않고 모금 파티에 참석한 뒤 나중에야 본부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모금 파티에 가기 전에 폭동 사실을 보고 받고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판단했다고 한다. 국장이 파티장에 있는 동안 경찰관들은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줄 모르는 가운데 폭동은 무서운 속도로 확산됐다.

웃기는 얘기다. 시장이 흐리멍덩하니까 휘하의 경찰국장 하나 다루지 못한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결국 브래들리 시장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경찰국장 게이츠 역시 물러가라는 압력에도 얼마를 버티다가 사임했다.

미 역사상 전대미문의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은 이틀하고 14시간이 흐른 5월2일 토요일 오전8시가 돼서야 6,000 명의 주 방위군이 투입돼 진압됐다. 이 과정에서 58명이 사망하고, 2,383명이 병원에 실려갔으며, 1만2,111 명이 경찰에 구속됐다. 크고 작은 방화만도 7,000건에 달했다.

그 후 흑인 교회들이 중심이 돼 모금운동을 펼치고 서명운동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경찰들에 대한 재심 항고소송이 열렸다. 그 결과 이듬해인 1993년 4월 17일 포엘과 스테이시 쿤 두 백인 경찰은 유죄판결을 받았고, 로스앤젤레스시는 로드니 킹에게 380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 폭동이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150억달러의 연방정부 투자가 이뤄졌다.

4ㆍ29 폭동은 미국사회의 뿌리깊은 인종갈등이 빚은 미 역사상 유례없는 대형 참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후 이 같은 갈등의 근원이 사라졌다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게 지금의 미국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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