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가수들마저 "음반시장은 완전히 붕괴했다"며 한탄하는 요즘에도 이들은 20년째 헤비메탈을 한다. 어느새 정규 8집을 넘기고 최근엔 디지털 싱글을 내며 9집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쇳소리'내는 음악을 한다는 편견을 견디며 2008년에도 헤비메탈을 하고 있는 그룹 '블랙홀'을 만났다. 앨범을 내며 대중적인 인기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헤비메탈 그룹이다.
2년여 만의 전국투어 공연을 내달 10일 서울 홍대 앞 상상마당에서 시작하는 이들에게 '헤비메탈이 뭐기에 그토록 끈질기게 매달리는 지' 라는 조금은 도발적인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었다.
블랙홀이 첫 앨범을 내던 80년대 말만 하더라도 부활, 시나위, 백두산 등 걸출한 밴드의 위력이 가요계를 흔들었다. 하지만 앨범과 아티스트 위주의 음반소비시장이 무너지면서 듣고 이해하기에 인내심이 필요한 헤비메탈과 같은 장르는 주류에서 밀려났고 세상은 귀에 편안한 '배경음악'으로 가득해졌다.
"듣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 헤비메탈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우선은 우리가 이 음악을 죽도록 좋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발전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장 진취적인 음악이기 때문이죠. 솔직하고 남성적인 장르이고요." 보컬 주상균은 한참을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것에 심취한 이들에게 왜 하냐고 묻는 것만큼 난해한 질문은 없기 때문이다.
장르의 편식 없이 고루 소비되는 일본시장과 비교해보면 초라한, 고작 십 수만 정도로 예측되는 헤비메탈 팬들에 의지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가요계 풍토가 이들에겐 괴로웠다. "사회적인 박탈감도 느꼈어요. 고등교육을 다 받았는데 직장은 없고, 누구나 원하는 일도 아니며 불투명한 미래에 매달린다는 자괴감도 심각했죠."
블랙홀의 헤비메탈은 기법에 충실하고 더 높은 난이도의 연주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정통에 가깝지만, 4집부터 명확하게 '한국적 헤비메탈'을 지향하는 밴드로 방향을 잡아왔다.
국악 리듬으로 드럼을 대신하고, 사물놀이를 접목하는 등 실험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이원재(기타)는 "우리의 메탈은 가사가 형이상학적이지 않고 늘 주변의 얘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한국적이죠.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싱글에는 사교육문제, 사회전반의 모럴해저드, 친일청산도 언급할 예정입니다"고 말한다.
헤비메탈만큼 어려운 음악도 없다. 일단 첫인상이 무겁고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사운드에 대한 선입견이 앨범을 고르는 손을 붙잡는다. 베이스 주자인 정병희는 '헤비메탈 편견'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우리를 겉보기에 성격 더럽고 쇠사슬 걸치며 음악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시끄럽게 소리지른다고 하죠. 그런데 이러면 음악이 안돼요. 메탈주자는 어떤 클래식 연주자보다 정확히 음을 짚어야 합니다. 공연장에 와보세요. 메탈이 그냥 소음이라는 생각은 달아날 것입니다."
주상균은 "얼마 전 유현상씨가 합류한 백두산이 재결성했어요. 헤비메탈이 주류로 뛰어드는 날도 멀지 않을 거예요"라며 멤버들과 함께 녹음실로 향했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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