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의 책] 젠틀 매드니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책] 젠틀 매드니스

입력
2008.04.23 05:24
0 0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 뜨인돌

책 읽기에만 정신을 쏟고 다른 일은 돌보지 아니하는 이를 옛사람들은 ‘서치(書癡)’라 불렀다. 책만 읽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스스로를 ‘책만 보는 바보’라며 <간서치전(看書癡傳)> 이란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서음(書淫)’이란 말도 있다. 글 읽기를 지나치게 즐겨 음란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어리석음, 그 음란은 결코 추하지 않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서구에도 책 사랑을 가리키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젠틀 매드니스(geltle madness)’라는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변호사ㆍ하원의원이었던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가 인쇄업자ㆍ도서수집가였던 자신의 할아버지 아이제이어 토머스를 가리켜 한 말이라 한다. ‘점잖은 미치광이’인 셈인데, 점잖게 풀어 쓰면 ‘가장 고귀한 질병, 즉 애서광증(愛書狂症)에 푹 젖어버린 분’ 정도가 되겠다.

<젠틀 매드니스> 는 그렇게 책에 미친 인간들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가 고대로부터 1980년대까지, 젠틀 매드니스의 사례들을 방대한 자료수집과 취재를 통해 펼쳐놓는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아내가 죽자 자신의 시 원고들을 같이 묻었다가 7년 후 무덤을 파헤쳐 <시집> 이란 책으로 출간한 시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이 시집은 하버드대 도서관에 있다), 다빈치의 과학에 대한 원고ㆍ삽화가 든 72쪽짜리 필사본을 경매에서 3,080만달러에 낙찰받은 빌 게이츠,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2만3,600여권의 희귀본을 훔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컬렉션을 만든 책도둑 스티븐 블룸버그 등등.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책은 번역본 분량이 자그마치 1,111쪽이다. 이런 책을 쓰고 번역하고 출판하고, 또 비싼 책값 주고 쇄를 거듭할 수 있도록 사서 읽으며 ‘문자의 독배를 들이켜는’ 독자들, 책사랑에 빠진 음란한 그들이 있기에 책은 저마다의 영혼을 갖게 된다.

오늘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