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의 양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거(典據 ; 뜻 또는 문법의 근거가 되는 원전의 용례)에 대한 해독능력 부족, 정본확정에 대한 무관심 등이 오역과 불완전한 번역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국역연구소장과 신승운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 고전적의 정리현황과 과제’ 라는 주제로 성균관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고전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의 번역물을 중심으로 전거 해독 능력의 문제점을 꼬집은 이 소장은 “한문은 많은 원전의 글들이 그대로 전거가 돼 도처에 예고없이 출몰한다”며 “글로서의 체면과 겉모양을 너무 의식하는데 집착해 원문의 중요한 의미와 정보를 누락한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사례를 1)고사가 변용 또는 응용된 곳을 찾지 못하는 경우 2) 고사가 없어도 전거를 밝혀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 3) 고사의 용례를 알지 못해 오독한 경우 등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사례를 제시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정구(1543~1620)가 창령현감으로 부임해 지은 ‘창령아문각우음’의 ‘失計昌山事事非 思之百爾不如歸(창녕에서 계책을 잘못해 일마다 그릇되니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느니만 못하다)‘를 ‘고을을 잘못 다스렸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2)에 해당하는 오역이다.
이 구절은 주자가 남강지사로 부임한 뒤 쓴 편지인 ‘여원사승’ 에서 ‘내가 이곳에 잘못 왔으니 말할 만한 것이 없다’(喜失計此來 無可言者)라는 구절을 응용한 것이므로 ‘부임하지 말아야 했을 곳에 부임했으니 좋은 정황이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의역하거나 주를 달아주어야 의미가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이산해(1539~1609)의 ‘답호수견기’의 ‘對月應思我 吟詩却人'중 ' 人'을사전의 용례를 그대로 인용해 ‘사람을 놀라게 한다’로 해석하는 것은 3)에 해당되는 오역이다.
이 교수는 이정구(1564~1635)의 ‘송목우경부풍’의 ‘외로운 거리에 칩거하며 손님이 올까 걱정이요 이별의 시 다 지었으나 남이 전할까 두려워라’ 라는 구절이나 홍언충(1473~1508)의 ‘진안도중음’의 ‘남을 두려워하여 한가히 시구를 적지 않거늘 속절없이 푸른 벼랑만 열길 높이로 가로질렀어라’ 같은 다른 문인들의 구절들을 유추해보고, 당시의 시국이 어수선했던 점을 감안, 이산해의 싯구를 ‘남들이 시구를 볼까 두려워한다’로 해석해야 옳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고사가 변용, 응용되어 숨어있는 곳은 겉으로 보아서는 전고를 밝히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고사를 찾아 주석으로 달지 않으면 심각한 오역이 될 수 있다”며 “모든 전거를 한 사람이 다 알 수 없고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운 만큼 윤독을 통한 공동번역도 번역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의 원자재격인 <승정원일기> 의 저본(원본)이 확정되지 않아 발생하는 변역의 질 저하 문제를 지적했다. 이 <승정원일기> 는 인조 원년(1623) 3월 이후 1910년 8월까지 288년치가 남아있는데 영조 20년(1744)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전체의 27.5%인 891책이 상당한 손상을 입고 나중에 보충한 이른바 개수본(改修本)이다.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
개수본에는 곳곳에 빠진 글자, 빠진 부분이 보이는데 신 교수는 개수본의 결락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원칙없이 번역함으로써 하나의 따옴표 안에 임금의 말과 신하의 말이 동시에 들어있는 황당한 경우도 보인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승정원일기> 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등 가치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라며 “관련자료를 대조해 오탈자를 수정하고 결락부분을 보완하는 교감작업을 통해 저본을 정본화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승정원일기>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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