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CEO(최고경영자)’ 명함을 들고 방미하기 직전 청와대와 내각, 한나라당에 두 가지 과제를 내줬다. 하나는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경기위축 속도가 너무 급하니 지난해 세수 여유분으로 내수 진작책을 마련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5월로 임기가 끝나는 17대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금융 및 기업 규제 완화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본인은 지난 주 내내 뉴욕과 워싱턴을 오가며 두 과제에 대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훌륭한 투자자는 투자를 결정할 때 우수한 CEO를 찾는다”며 자신의 비전과 실천력을 앞세워 단번에 11억 달러 투자를 유치했고, 쇠고기시장 개방협상의 타결을 계기로 한미 FTA 조기출범의 필요성에 대한 미국 조야의 공감대도 크게 넓혔다.
“캠프 데이비드의 하루 숙박료를 너무 비싸게 치렀다”는 논란이 있지만, 청와대가 ‘상호 윈-윈의 성공작’이라고 자평한 방미성과를 주판알 튕겨가며 야박하게 계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오히려 꼬여 있다. 지난 주말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세계잉여금으로 4조원대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려던 방침이 뜻밖의 내부복병을 만나서다. 문제는 “내수와 고용이 부진하니 추경을 편성해 재정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정부의 상투적 주장보다 당의 반대논리가 한층 정교하다는 점이다.
국가재정법에 경기부양 차원의 추경을 허용하는 근거가 없고, 재정지출 확대는 작은 정부 원칙에 맞지 않으며, 중ㆍ장기적 안목에서 지금은 추경보다 감세를 통한 내수진작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한미 정상회담 일정에 쫓기듯이 매듭지은 한미 쇠고기 협상도 못마땅한 눈치다. 미국 의회의 FTA 비준동의를 얻기 위한 선결절차라고는 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내주는 바람에 당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됐다는 것이다. 뒤늦게 도축세 폐지나 소득보전 등의 대책이 나오긴 했으나, 축산농가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 야당과 비준동의안 협상을 진행할 일이 암담한 처지다.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정부가 발표하고 당이 뒤치다꺼리하는 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며 “정책을 추진할 때 당과 사전 협의하고 정치권의 협조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먼저”라고 요구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여기에 한층 반발 강도가 높은 야당변수까지 얹으면, 총선승리를 바탕으로 속전속결의 성장 드라이브를 걸려던 ‘이명박 플랜’은 크게 흔들리게 된다. 타협과 대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가 4ㆍ9 민심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믿는 이 대통령은 출국 전보다 더 꽉 막힌 ‘여의도식 정치’에 염증을 느낄 법도 하다.
그러나 역으로 이 시점에서 이 대통령은 기업 및 지자체CEO로서 터득한 리더십과 자질이 국가CEO의 리더십에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여당 내부 혹은 여야 간의 ‘복잡하고 잡다한’ 정치는 당에 미루고, 자신은 외국 지도자를 경쟁자 삼아 뛰겠다는 순진한 발상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다.
힌트는 의외로 쉬운 데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재계 리더들과의 만남에서 쇠고기 협상 합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곧바로 조속한 FTA 타결을 강조했다. 어제 일본에선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후생’이란 이름으로 이익을 많이 내게 된 기업CEO가 기뻐하는 모습은 분명한 반면, 송아지 값의 급락에 눈물짓는 축산농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국가CEO의 태도는 희미하다.
물론 그의 뜻은 아닐 것이다. 측근들도 “환경미화원 등의 밑바닥 경력을 훈장처럼 말하는 이 대통령은 우측 깜박이를 켜고 좌측으로 가면 갔지, 더 우측을 갈 분이 아니다”라고 자신한다. 그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런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대기업과 기득권층을 향하는 것같은 정책을 용인하는 것도 이런 믿음에서다. 여의도 정치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 물을 떠나 이 대통령이 설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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