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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자전거 도둑

입력
2008.04.2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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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 / 강

1997년 4월 22일 소설가 김소진이 서른넷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했다. 그 해 초쯤인가, 서교동의 강 출판사에 들렀다가 그 한켠을 작업실로 쓰고 있던 김소진을 만났었다.

늘 모범생 소년 같은 해사한 모습의 그가 머플러를 두르고 있던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아무튼 겨울이었다. 오늘 표지로 쓴 소설집 <자전거 도둑> 은 그날 그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그의 부고를 써야 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11주기다.

1990년대 한국 소설이 이념에의 열정으로 들끓었던 80년대를 추억한 후일담소설이나 파편화된 세계에서 개인의 일상과 욕망을 그린 내면소설, 크게 두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김소진은 그만의 개성적 리얼리즘으로 서민의 아픔과 시대의 고민을 기록한, 희귀한 성실성의 작가였다. 그의 리얼리즘을 ‘아버지’의 기억과 ‘밥풀때기’의 세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까. <자전거 도둑> 의 표제작에는 두 가지가 다 들어있다.

2차대전 종전 후의 피폐한 이탈리아 사회를 그린 비토리오 데 시카의 동명 영화를 소재로 한 이 단편에서 김소진은 우리의 가난했던 아버지와 아들, 슬픈 오빠와 누이의 기억을 끌어낸다. “차라리 죽는 한이 있어도 애비라는 존재는 되지 말자.” 그가 이 소설에 쓴 처절한 아버지 부정은 그러나 ‘지치고 상처입은 이들의 깊고 가없는 삶과 꿈의 언저리에 손톱만큼이나 가 닿을 수’(유고산문집 <아버지의 미소> 에서) 있기를 바라던 그의 다짐과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다른 글에서 그는 “덧없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눈물 흘리고 욕하고 그리워하며 헐떡이는 사이에… 내가 애타게 찾은 아버지는 바로 나”였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김소진이 아버지와, ‘소설노동자’였던 자신을 포함해, ‘우리 앞에 어떤 세상이 열리든 간에 소외에서 벗어나지 못할 군상’을 뭉뚱그린 단어가 밥풀때기다. 그는 한 산문에서 “어색하더라도 그 곁에 내가 가서 서 있으면 안 될까… 문학은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말도록 설레발을 놓고 등 떠미는 게 아닐까”라고 썼었다. 김소진은 그가 남긴 작품으로 거기 서 있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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