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일(현지시간) 9ㆍ11테러의 현장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뉴욕 양키스 구장에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한 것을 마지막으로 6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쳤다.
방미 기간 동안 CNN 등 미국의 주요 TV채널은 베네딕토 16세의 미국내 활동을 대부분 생중계했고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유력 신문들도 교황에 관련된 기사를 거의 매일 1면에 실었다.
교황이 워싱턴과 뉴욕에서 두 차례 집전한 군중 미사에는 10만6,000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 들었고 교황의 동선을 따라 많은 인파들이 몰려 다니는 바람에 극심한 교통체증이 뒤따랐다.
마치 '교황 주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미국이 교황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3억명에 가까운 미국 인구 가운데 6,500만명에 이르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비율은 미 인구의 51%를 점하고 있는 개신교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 가톨릭 신자인 중남미 출신 히스패닉 이민자들이 계속 유입되면서 가톨릭 인구는 최소한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가톨릭 인구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을 포함, 최근에 선출된 9명의 미 대통령 가운데 8명이 가톨릭 유권자들 가운데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 여부가 역대 미 대선의 풍향계 역할을 했던 셈이다. 공항에까지 직접 나가 맞이하는 등 교황을 극진히 예우한 부시 대통령은 개신교도이지만 그를 둘러싸고 있는 핵심 참모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여서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가 미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일 출국한 뉴욕 케네디 공항에는 딕 체니 부통령이 나가 환송했다. 교황의 방미가 특히 부각될 수 있었던 데에는 대선전에 돌입해 있는 미 민주, 공화 양당의 가톨릭 신자들에 대한 경쟁적 구애가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가톨릭 신자인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워싱턴의 군중 미사에 참여했고 민주당은 11월 대선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황은 방미기간 동안 미국 내 사제들에 의해 저질러진 아동 성추행에 대해 사죄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와 화해'를 무엇보다 강조했다. 교황은 워싱턴에서 직접 성추행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하기도 했고 주요 행사 때마다 이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반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많은 이민자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점 때문에 베네딕토 16세는 미국에 좀더 관대한 이민정책, '가족들을 갈라놓지 않는'이민정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교황은 그라운드 제로에선 "폭력적인 세상에 평화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 뒤 9ㆍ11 테러 피해와 관련된 사람들을 초청해 위로하기도 했다.
교황은 6만여명이 참여한 뉴욕 양키스 구장에서의 대규모 미사에서 "자유와 기회의 땅인 이곳에서 교회는 다양한 군중을 뭉치게 하고 미국 사회를 위해 크게 기여했다"며 미 교회를 칭송한 뒤 "자유의 축복을 현명하게 활용해 줄 것"을 호소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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