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나는 영화배우 김지미씨와, 지금은 고인이 된 수필가 조경희(정무장관 역임) 여사, 그리고 김성우(명예 시인, 명예 배우) 선배와 함께 서울 강남 어딘가에 있는 조그마한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기 있는 네 사람은 모두 개성이 강했다. 우선 조 여사는 위스키를 좋아 했고, 김 선배는 맥주 아니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맥주 중에서도 반드시 병에 들어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큰 병으로 되어 있는 옛날 것을 좋아 했다. 그리고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워야 한다. 이 입맛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술 종류를 가리지 않는 편이다. 막걸리든 위스키든 무엇이든지 좋다. 너무 달지만 않으면 된다. 그런데 김지미씨는 의외로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체질상 술을 못 마시는 겁니까, 아니면 종교적인 이유 입니까?”하고 언젠가 내가 물었다.
“그냥 안 마시는 거예요. 술 안 마시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내가 커피를 안 마시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누가 나한테 커피를 왜 안 마시느냐고 물어 오면 나도 그렇게 대답하기 때문이다. 술을 전혀 안 마시는 김지미씨는 그러나, 술자리에는 기꺼이 참석한다. 남들이 술잔을 기울일 때 그녀는 담배를 피운다. 담배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다. 한 개비가 꺼질 때 쯤 또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 정도이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 속에서 그나마도 담배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이해가 간다.
이왕 질문을 한 김에 하나 더 물어봤다.
“화투를 칠 때 육목단이 나오면 ‘김지미 나왔다’고 말들을 하는데 알고 있어요?”
“육목단이 뭐예요? 나 정말 모르겠는데요. 사실이 그렇다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뭐야! 육목단도 모른다면 아예 화투를 만져 보지도 않았단 말인가? 벌써 오래 전 일이니까, 지금쯤은 달라졌을려나.
김지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비교 하는 사람이 많은데, 막상 그녀는 반가워하지 않는다. 각기 개성이 있고 연기가 다른데, 비교가 되는 것이 싫은 눈치다. 싫어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들어 온 말이다.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완벽 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이 영화 감독들의 평이니까. 게다가 연기도 다부지게 한다는 것 때문에 동양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고 비교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을 여러 번 한 것까지 똑 같다고 토를 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거슬리는 대목일 것이다.
1940년 생으로 용띠인 그녀는 1957년, 17살 때(덕성여고 재학 중) 김기영 감독에게 픽업되어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를 하고 3년 뒤에 홍성기 감독과 결혼을 한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23살에 배우 최무룡과 재혼(1963년)하고, 그 후 8살이나 나이가 젊은 가수 나훈아와 결혼(1976년)하고, 다시 내과 의사인 이종구 박사와 결혼(1991년)을 하게 된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고 이혼하고 하는 것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이지만 막상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8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자기의 상대 중에 가수 에디 피셔와 결혼 한 것이 가장 실수 한 것이고, 리차드 버튼을 제일 사랑했노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김지미씨는 누구를 제일 사랑했고 누구와의 결혼이 가장 실수였을까? 아직 본인이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궁금하다.
나는 김지미씨와 친하게 지내지만 최무룡씨와는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었다. 이 두 스타들은 결혼할 때나 이혼할 때나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최무룡씨와 사랑에 빠졌고, 쌍벌죄(간통죄)로 고생을 했으며,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라며 결혼을 했지만 6,7년 뒤에 이혼을 할 때는 유명한 말,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고 하며 헤어졌다.
이들이 헤어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최무룡씨의 영화제작 실패였다. 영화제작을 하고 싶다고 나한테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매우 자상한 성격이고 마음이 약한 최무룡씨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영화 제작을 강행했다. 결과는 큰 실패. (최무룡씨에 관한 많은 이야기는 추후에 하려고 한다.)
이들이 헤어질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나는 김지미씨와 인터뷰를 하기위해 정릉 집으로 찾아 갔다. 요새나 옛날이나 여자 배우(가수도 마찬가지)들이 질색하는 것은 아침 일찍 집으로 기자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대체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늦잠 자는 것을 방해 받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화장 안 한 ’쌩얼‘(생얼굴)을 보이기가 싫은 것이 큰 이유가 된다. 그러나 기자들은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이것저것 사정 보다간 아무 것도 못한다. 나는 그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갔다가 나 보다 더 큰 개 세 마리한테 물려 죽을 뻔했다. 아니 세 마리인지 네 마리인지 모0渼쨉?이 녀석들이 와락 달려드는 바람에 무방비 상태인 나는 있는 힘을 다 해서 나무로 기어 올라갔다. 천신만고 끝에 응접실에 들어갔는데, 개한테 물려 죽을 뻔한 이야기를 듣고 김지미씨는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 후로도 그녀가 그렇게 웃는 것을 본적이 없다. 그녀는 쌩얼로도 예뻤다. 쌩얼이 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최고의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최고의 배우로서 군림을 했으며 항상 많은 스캔들과 화제의 중심에 있던 김지미--그녀의 인간적인 고뇌,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다음주 화요일 29일자에는 ‘왜 여자배우는 남자가수를 좋아할까?’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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