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등학교 5학년 김모(12ㆍ경기 성남시 분당구)군은 다음 달 4일에서 7일까지 부모와 함께 캄보디아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 김군은 "고대 불교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는 캄보디아를 여행지로 정했다"고 말했다. 김군이 학기 중임에도 '마음놓고' 해외 체험학습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학교가 이 기간을 학교장 재량 휴업일로 정한 덕분이다.
#2. 제주 애월읍에 사는 양모(38ㆍ여)씨는 자율 휴업일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최근 초등생 아이가 들고 온 가정통신문에는 "5월 6~9일을 학사운영 재량 휴업일로 결정했다"는 내용만 달랑 적혀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초등학생 두 자녀에 젖먹이 아이까지 있는 양씨는 "맞벌이 가정을 위한 변변한 프로그램 하나 없이 쉬라고 강요하는 발상부터 잘못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학부모들의 마음이 양분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무려 9일이나 쉬게 되는 '단기 방학' 때문이다. 단기 방학은 지난해 7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학기 중 단기방학(재량휴업) 활성화 방안'이란 지침을 각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면서 추진됐다. '가족간 유대를 증진하고 지역 문화활동을 활성화 한다'는 취지에서다.
물론 일찌감치 자녀와 여행을 계획한 학부모들도 적지 않지만, 마땅히 자녀를 맡길 곳이 없는 맞벌이 가정이나 저소득층은 "5월을 맞는게 두렵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21일 각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전국 각급 학교는 내달 어린이날(5일)과 석가탄신일(12일)을 전후로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9일 동안 자율 휴업일을 실시한다.
휴업일수는 나흘(6~9일)에 불과하지만 10일이 '놀토'(노는 토요일)인 점을 감안하면 4일부터 12일까지 사실상 학기 중 방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나마 단기 방학 참여율이 낮은 서울 정도가 학부모 반발을 고려해 하루나 이틀을 휴일에 붙여 쉴 뿐이다.
단기방학의 그늘은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나홀로 학생'이다. 맞벌이 부부 자녀나 결손가정 학생들이 대부분인 이들에 대한 교육당국의 대책이 전무한 탓이다. 학교가 혹여 손을 놓기라도 한다면 장기간 방치 상태에 놓이는 것은 불문가지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급식이 끊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다. 학부모 최모(43ㆍ여)씨는 "도서실 운영이나 교육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방학 중에도 열어 놓는 학교 문을 학기 중에 전면 폐쇄하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학부모들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학교장의 일방적 결정으로 시행되는 단기 방학은 졸속"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울산에 사는 한 학부모는 "학교에 항의해도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온다"며 허탈해 했다. 심지어 경기 성남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운위에서 결정한 휴업 일수를 학교장이 지역 교장단 합의 사항이라는 이유로 연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부유층을 중심으로 단기 방학을 이용한 해외 여행 수요가 폭증하면서 위화감 조성도 우려되고 있다. 여행 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6∼9일 동남아와 유럽 등지로 떠나는 여행 상품 대부분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전은자 교육자치위원장은 "지금도 가족 단위의 체험학습은 학교에 신청만 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데 굳이 장기간의 단기방학을 만들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편의주의적인 발상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김이삭 기자 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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