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진 지음ㆍ이옥용 옮김/이미지박스 발행(전2권)ㆍ각권 528쪽ㆍ각권 1만3,000원
이민진(39)씨는 일곱 살 때인 1976년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한 재미동포 1.5세대다. 예일대 역사학과,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씨는 건강 악화로 직장을 그만두고 가사를 돌보며 소설을 써왔다.
이민자의 딸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 5월 발표한 데뷔작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은 USA투데이, 뉴욕타임스, 뉴스위크 등 미국 유수 언론에 우호적인 서평이 실리며 주목 받았다. 출간 한 달 전 터진 ‘조승희 총기난사 사건’과 맞물려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파헤치는 소설”(뉴욕타임스)로도 화제가 됐다. 백만장자를>
수다한 이민자들이 등장하는 소설의 축을 담당하는 인물은 ‘케이시 한’이다. 명문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지만 케이시는 번듯한 전문직 종사자가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희망을 외면하며 백화점 일용직으로 소일한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두 딸을 어렵사리 뒷바라지한 아버지로선 자녀에게 그만한 요구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딸의 생각은 다르다. “
아버지가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것만큼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고요.…나 같은 아이가 그런 대학에 다니는 게 어떤 건지 아버지가 알기나 하세요?… 아버지가 세탁소를 한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마치 내가 샤워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내게서 저만큼 떨어져요.”(32쪽) 케이시는 인종, 사회계층, 그리고 부모 세대와의 갈등까지 겹겹의 제약에 둘러싸여 있고, 그것이 그녀를 좌절하게 한다.
1,000쪽을 넘는 분량의 이 장편은, 아버지와의 불화 끝에 뺨을 맞고 가출한 케이시의 오디세이다. 그녀와 직간접으로 연결된 인간 군상(주로 한인 이민자)과 그들의 사연이 풍성하게 펼쳐지며 독자를 매혹한다. 케이시가 즐겨 읽는 <제인 에어> <미들 마치> 가 그렇듯, 이 소설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소설의 특징-방대한 분량, 선명한 스토리라인, 수많은 인물과 사연-을 꼭 빼닮았다. 미들> 제인>
안과 의사인 홀아버지 밑에서 단정하고 수동적인 성격으로 자란 엘라(케이시의 친구), 냉철하게 출세 지향적인 삶을 지향하는 엘라의 전 남편 테드, 출중한 금융분석가이면서도 도박에 빠져 허우적대는 케이시의 연인 은우 등 젊은 이민 후속 세대와, 가부장적 남편에게 순종하며 딸의 분방한 삶에 노심초사하는 케이시의 엄마 리아, 케이시를 친딸처럼 아끼면서도 은근히 돈으로 구속하려 드는 기업가 사빈느 등의 이민 1세대를 아우르는 주요 작중 인물들은 제가끔 개성적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재미동포들의 생태와 심리를 세밀하게 드러낸다.
소설은 세계 금융 중심지인 뉴욕의 복판(금융회사ㆍ백화점 등)을 비추는 세태소설이자 세대간 성 풍속이 핍진하게 드러나는 연애소설인 동시에, 20대 초반 여성 케이시의 삶의 분투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세간의 시선처럼 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민 문학’ 작품이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편향된 독법으로 이 작품의 풍만한 재미를 제약할 필요는 없겠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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