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각에는 선거 때 관권 개입을 차단하기 위한 ‘퍼다 룰’(Purdah rule), ‘병풍(屛風) 규칙’이란 게 있다. 투표 전 3~5주를 ‘병풍 기간’으로 설정, 정부 부처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시책을 공표하는 것을 막는다. 내각 세부지침은 “발표를 일부러 미뤄 선거에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된다”며 ‘세심한 균형’을 주문하고 있다. 최근 사례를 보면 5월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내무장관이 대 테러 경찰력 증강계획을 발표하자, 야당이 즉각 ‘퍼다 룰’ 위반이라며 시정조치를 요구했다.
■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서울지역 압승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뉴타운 공약 논란이 뜨겁다. 여야 후보가 앞 다퉈 내건 뉴타운 공약이 오세훈 시장의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는 발언으로 모두 헛된 공약이 될 처지인 때문이다.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언론은 ‘헛공약 선거’를 개탄하며 오 시장의 책임을 거론했다.
거짓 공약인 줄 알면서도 적극 해명하지 않아 한나라당을 도왔다는 것이다. 총선 참패로 풀이 죽었던 통합민주당은 여당의 선봉 정몽준 의원을 표적 삼아 기세를 드높였다. 그가 “동작 뉴타운 건설에 오 시장이 동의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당선무효’까지 외치고 있다.
■ 여당 당선자들은 서울시의 뉴타운 정책을 공박하는 돌려차기로 맞섰다. 정책 논쟁이 실종됐다던 총선이 뒤늦게 제 모습을 찾은 듯하다. 그러나 솔직히 모두가 진정한 정책 논쟁보다 정치적 기싸움에 열 올리는 것으로 비친다.
민주당 정동영 후보도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고 유인태 의원은 부끄럽다고 반성까지 한 터에, “헛공약과 허위사실 유포는 다르다”고 정색하는 건 우습다. 당선무효를 떠들면서 정작 직접 당사자인 정동영 후보가 침묵하는 게 그 허망함을 일깨운다.
■ ‘병풍 규칙’에 비춰보면, ‘뉴타운 불가’를 미리 밝히지 않은 것을 잘못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단체장이 공약과 유세 발언에 일일이 논평한다면, 거센 관권개입 논란을 부를 게 뻔하다. 총선 후보들의 구태의연한 지역개발 공약 남발은 꾸짖어야 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특정 후보와 단체장의 목을 붙잡고, 링 밖의 난투극을 벌이는 것은 꼴 사납다. 유권자들이 모처럼 ‘연고 투표’를 벗어나 ‘이익 투표’ 경향을 보였다고 평가하다가 ‘욕망의 정치’를 비웃는 것도 초점이 빗나갔다. 정치와 선거를 바로 이끌려면 저마다 제 행태부터 반성할 일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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