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 수용소의 비인도적 행위에 대해 국제적 비난 여론이 비등하던 2005년 여름. 미 정부는 퇴역 장성들을 딕 체니 부통령 전용기에 태워 관타나모 수용소를 직접 둘러보게 했다. 이후 이들은 각종 매체에 출연, 객관적 군사전문가로 자처하며 관타나모에 대한 논평을 쏟아냈다. 정부가 원하는 대로 관타나모 수용소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정부의 대가는 곧 돌아왔다. 이들이 로비스트로 나선 무기업체들이 정부의 이라크 관련 수주 계약을 따낸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조지 W 부시 미 정부가 이 같은 방법으로 주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군사문제 평론가들을 배후 조종해 정부의 군사 정책에 대한 우호적인 논평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20일 폭로했다. TV에 출연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 관련 논평을 쏟아내는 군사 전문가들은 대부분 퇴역한 군 고위 관리들이다. 하지만 방송국들은 이들이 군수업체의 로비스트나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에게 숨겨왔다.
부시 정부는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이 군사 전문가들을 수 백차례에 걸쳐 비밀 브리핑에 초대해 극비 정보 등을 들려줬다고 NYT는 보도했다. 이 자리에서는 무기 매매계약이나 예산 문제를 결정할 수 있는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 국방부 법무부 고위 관리들과의 만남이 주선됐다. 그 대가로 이 군사 전문가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가 의심스러운 경우에도 정부의 의도대로 해설을 해왔다고 NYT는 주장했다.
국방부 내부 자료는 이들을 ‘메시지 확산자’나 ‘트로이 목마’로 지칭하며 “수백만명에게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심지어 국방부에 정부에 불리한 뉴스를 방송한 방송국의 약점을 알려주거나, 미리 방송 내용을 알려주기는 등 첩자 노릇까지 불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의 군사문제 분석가로 활동했던 로버트 S 베벨라쿠아는 “부시 정부 사람들은 ‘당신이 우리 뜻대로 발언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NBC 방송에 군사전문가로 출연했던 케네스 앨러드는 “정부의 개입은 치밀하고 적극적이어서 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어떤 전문가는 이라크 전황 악화와 관련해 방송 브리핑과 이후 출판된 책에서 서로 상반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말했다.
국방부는 “우리는 군사 전문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만 전달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NYT는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확보한 이메일이나 의사록 등 수년치의 8,000쪽 분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와 언론이 최소한의 긴장도 유지하지 않고 철저하게 공생관계를 맺었다”고 지적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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