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남원은 ‘이야기의 땅’이다. 지리산을 이고 섬진강을 허리에 두른 이곳은 너른 들녘 만큼이나 풍요로운 ‘플롯’을 담고 있다. 현존하는 판소리 여섯 마당 중에서 춘향가, 흥보가, 변강쇠타령이 남원을 배경으로 한다. 현대에 들어 최명희의 <혼불> 까지 더해졌으니 이야기의 땅, 문학의 터전이란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을 것이다. 혼불>
■ 춘향전의 광한루
봄꽃과 떠나는 남원 이야기 여행은 우선 춘향의 흔적을 좇게 된다. 춘향과 남원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그 중심은 역시 오작교가 있는 광한루다.
광한루(廣寒樓),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주재했던 ‘광한전’에서 이름을 따 온 우주적인 뜻을 담은 건물이다. 광한루에 아름다운 사랑의 스토리를 안겨 준 것이 이몽룡과 춘향이라면, 이 멋진 건물이 세워지기까지엔 황희, 정인지, 정철 세 분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남원ㆍ장수 일원의 호족 출신인 황희가 조선의 중앙 정계와 갈등을 빚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이곳 지리산 자락 섬진강 상류인 요천변에 광통루(廣通樓)를 세웠다.
이후 정인지가 남원부사로 부임하면서 ‘광한루’로 이름을 고치게 했고, 송강 정철이 요천의 강물을 끌어들여 인공호수를 만들고 3개의 섬을 조성, 별유천지의 조화세상을 빚어냈다.
춘향전으로 워낙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탓에 많은 이들이 찾지도 않으면서 광한루에 식상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을 직접 찾은 이들에게 광한루는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서울의 창덕궁이나 경복궁과도 다르고, 담양의 소쇄원 등 양반의 정원과도 또 다른 느낌이다.
광한루로 향하는 오작교에서는 방문객들이 연못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는다. 커다란 비단잉어들이 물빛 사이로 고개를 치켜들고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탐한다.
어른 팔 길이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잉어가 3,000마리나 있다고 한다. 둘레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녹색의 호수 위로 이제 막 물오르기 시작한 아기연둣빛의 신록을 떨구고 있다. 어느 누원도 이처럼 풍요롭고 아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천 건너편에는 남원의 야간 명물로 새로 등장한 ‘춘향테마파크’가 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촬영세트장을 비롯해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축제의 장 등 춘향전을 테마별로 재현해놓은 공간이다. 춘향뎐>
■ 흥부마을, 놀부마을
남원의 서쪽 자락, 인월면과 아영면에 흥부마을이 있다.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났다는 곳이고,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흥부가 부자가 되었다는 발복지다.
철쭉으로 유명한 봉화산 자락의 상성마을 입구에는 흥부 부부가 박을 타는 형상의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는다. 사금 채취장으로 전해지는 새금모퉁이, 흥부가 허기로 쓰러졌을 때 흰죽을 먹여 살린 은인에게 논을 사주었다는 흰죽배미, 놀부가 흥부집을 찾아왔다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 노디막거리,
흥부와 놀부가 살았다는 장자골 등이 지척이다. 뒷산에는 덕을 쌓아 흥부의 모델이 된 박춘보의 무덤과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는 망제단이 평화로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인월면 성산마을은 소작인과 이웃을 괴롭혀 놀부의 모델이 된 박첨지가 살던 곳으로 연비봉, 화초장 바위, 흥부네 텃밭, 연하다리 등 흥보가에 나오는 지명이 실제로 전해지고 있다. 저수지를 가운데 두고 마을의 집들이 가파른 산기슭에 모여 있다.
■ 변강쇠백장공원, 실상사
지리산 뱀사골로 가는 입구의 산내면 대정리 백장암 계곡은 변강쇠타령의 무대다. 변강쇠와 옹녀가 놀았다고 전해지는 백장바위, 남녀의 성기 모양을 한 음양바위, 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부부 금슬이 좋아진다는 근연바위 등이 계곡 곳곳에 숨어있다.
도로변에는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벌을 받아 장승처럼 굳어 죽었다는 전설을 형상화한 변강쇠백장공원이 조성돼 있다.
인근 실상사는 통일신라 때인 828년(흥덕왕 3년) 선종 구산선문의 탯자리로 이름높은 절집이다. 지리산을 꽃잎으로 보았을 때 꽃의 중앙에 자리한 곳이다.
길손을 처음 반겨주는 것은 만수천 해탈교 양쪽에 서 있는 3기의 석장승. 본래 석장승은 4기가 있었으나 1930년대 대홍수 때 한 기가 물에 떠내려갔다고 한다. 벙거지를 쓴 모습의 장승 얼굴들은 모두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실상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대웅전(보광전)도 그 역사에 비해선 너무나 작고 소박하다. 큰 절에 왔다기보다는 이웃집에 놀러온 듯한 느낌이랄까. 경주의 황룡사지보다 더 큰 목탑지 발굴 등으로 경내는 조금 어수선해 보인다.
이 절은 보물로 지정된 유물만도 11점이나 있는 ‘보물 사찰’이다. 보광전 내 범종에는 일본 지도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있어, 이곳을 치면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전해진다. 약사전에 모셔진 철제여래좌상은 2.7m 크기의 거대한 철불이다. 부처가 연꽃대좌 아닌 흙바닥에 앉아계신 까닭은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한반도의 지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 혼불마을, 서도역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은 소설 <혼불> 의 무대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혼불> 은 작가 최명희(1947~1998)가 1996년까지 17년간 피를 토하면서 써내려간 소설이다. 혼불> 혼불>
일제강점기 양반가를 지켜온 3대에 걸친 며느리들과 거멍굴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민초들의 생활상과 전통 관습을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생생하게 복원했다. 노봉마을은 최명희 부친의 고향이다. 작가는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노봉마을에서 유년의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2004년 개관한 ‘혼불문학관’에서는 디오라마(축소 모형)로 재연된 소설 속 장면이나, 작가의 친필 원고 등을 볼 수 있다. 너른 잔디밭과 물레방아 등을 갖춘 문학관 옆에는 청호저수지가 있다. 소설에서 청암부인이 가뭄에 대비해 팠다고 묘사한 못이다.
마을 안쪽에는 솟을대문 우뚝한 종택이 있다. 청암부인, 율촌댁, 효원의 종부 3대가 살던 곳으로 묘사된 원뜸 종가다. 소설 속 효원의 모델이던 노부인이 얼마 전 이곳에서 불의의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마을 입구의 서도역도 소설의 주요 무대다. 효원과 강모, 두 주인공이 새로운 인생을 열게 되는 매개체인 곳이다. 효원이 매안으로 신행 올 때 처음 느낀 남원의 모습이었고, 강모가 전주로 학교를 가고 만주로 도피할 때 거쳤던 곳이다.
전라선 철도 이설로 사라질뻔했던 서도역사는 <혼불> 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으로 남게 됐다. 남원시가 1930년대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해 놓았다. 나무로 지은 역사, 녹슨 철로, 수동 신호기가 그 시절의 정지된 화면으로 멈춰 있다. 혼불>
남원=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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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개막 춘향제 즐거움 넘실/ 봉화산·바래봉엔 철쭉향 넘실
요천변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벚꽃이 사그라들고 대신 붉은 철쭉이 단심을 노래하기 시작할 때, 남원에서는 사랑의 축제 '춘향제'가 열린다. 5월 1일 개막하는 춘향제는 올해로 78회. 역사가 깊다. 5일까지 광한루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올해 춘향제는 전통문화, 공연예술, 체험 및 이벤트, 부대행사 등 4개 분야 31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전통문화에서는 춘향국악대전, 방자 농악 한마당, 창극 춘향전, 춘향 선발대회, 신관사또 부임 행차, 민속씨름대회 등이 선보이며 공연예술로는 개막 축하공연, 춘향 은빛가요제, 방자 놀이마당, 야외 공연, 세기의 사랑 퍼레이드 등이 준비된다.
체험 및 이벤트 행사로는 목공예와 도예작품을 직접 만들어보는 방자 체험마당과 미꾸라지 잡기, 소원 등 만들기, 짚신 신기 등이 열린다. 향토음식문화체험, 세계음식문화체험, 춘향문학체험, 어린이 춘향 선발대회 등이 부대행사로 열린다.
남원의 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가 철쭉꽃밭이다. 남원의 철쭉 명소 바래봉과 봉화산 아래쪽에서는 5월 초에 철쭉이 절정을 이루고, 중턱은 3~12일, 정상 부근은 보름을 넘으면 만개한다.
운봉읍에서 오르는 바래봉은 봉우리가 스님들 밥그릇(바리때)을 닮았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왕복 4시간 가량의 산길은 돌밭길이지만 완만한 편. 봉화산 자락 철쭉밭은 흥부마을인 아영면 성리에서 오른다.
5월 10~17일에는 운봉읍 용산리 지리산허브밸리에서 '2008 남원 허브축제'도 열린다. 허브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됐다.
남원에는 또 올해 3월부터 재미난 볼거리가 생겼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에 광한루원 일원에서 진행되는 '신관사또 부임행차'와 '춘향전 마당극' 등의 거리 공연이다.
5색 깃발을 앞세우고 가마를 탄 변사또가 행차하면 육방과 취타대 등이 뒤따른다. 행렬단이 광한루원 광장에 도착하면 기생점고 마당극이 펼쳐진다. 관람태도가 불량한 관광객을 뽑아 주리틀기 벌도 내린다. 남원시 문화관광과 (063)620-6165
남원=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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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수첩/ 남원
■ 바래봉 아래 인월면 인월리에는 알찬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된 달오름마을이 있다. 숙박과 함께 달떡 만들기, 농사 체험, 기 수련, 명상체조, 달오름 소원빌기 등을 함께 할 수 있다. 마을에서 바래봉까지는 왕복 4시간 걸린다. 마을 전체에서 150명 동시 수용 가능. 방값은 2인 기준 2만원, 1인 추가시 5,000원. 식사는 2식에 1인 1만원. 5가지 체험을 묶어 5,000원. http//dalorum.go2vil.org (063)636-2233
■ 대형 숙박시설은 일성지리산콘도(063-636-7000), 토비스콘도(636-3663), 중앙하이츠콘도(626-8080), 한국콘도(063-632-7400) 등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우수 중저가 숙박업소인 ‘굿 스테이’ 지정 업소는 그린피아(063-636-7209)가 있다.
■ 추어탕과 미꾸라지숙회(사진)는 남원의 대표 음식. 광한루원 아래쪽 요천변에 있는 천거동을 중심으로 추어탕 테마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새집추어탕(063-625-2443), 남원추어탕(063-625-3009) 등이 소문난 집이다.
■ 지리산 자락의 흑돼지도 유명하다. 운봉의 황산토종정육식당(063-634-7293)은 남원 주민들이 자주 찾는 고깃집. 육질이 쫄깃하고 단단한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 200g이 7,000원. 함께 내놓는 돼지 내장으로 만든 ‘진짜’ 순대국(4,000원)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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