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차창룡 네번째 시집 출간 '고시원은 괜찮아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차창룡 네번째 시집 출간 '고시원은 괜찮아요'

입력
2008.04.21 09:04
0 0

차창룡(42)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 (창비 발행)를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첫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 (1994)에서부터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1997), <나무 물고기> (2002)를 관통해온 기지 넘치는 풍자 정신이 한층 날 섰다.

헬스클럽은 시인의 눈에 '싯다르타가 수행했다는 고행림(苦行林)이라는 공원을 축소한/ 실내 고행림'이다. '이 숲에는 고행에 적합한 온갖 형틀이 골고루 마련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돈만 내면 마음껏 고행을 즐길 수 있다'.

그저 웃자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 고행의 장(場)이다. 남성 중심적 미의 기준에 맞추려 젊은 아가씨는 러닝 머신에서 '아름다운 고기를 만들고 있'고, 대기업 다니는 중년 남성은 운동 기구로 '과외수업을 받고 있는 그의 아이들'이 먹을 '맛있는 고기를 굽고 있다'('실내 고행림').

표제작에서 고시원은 선원(禪院)으로 화한다. 국적 불문의 가난한 자들이 옹기종기한 이 열악한 주거지를 시인은 '외국인을 위한 선원'이라 눙친다.

'오래 수행한 선승일수록 공양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 법이어서 고시원 밥상머리엔 완고한 침묵이 흐르고, '어차피 열반에 들면/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테'니 불이 날지라도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인은 불우한 자들을 연대는커녕 '홀로 존귀한 최고의 선승들'로 만드는 비정한 사회를 세게 꼬집는다.

생태계를 망가뜨리며 만들어진 지하철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영혼의 얼굴을 깔고 앉'은 시인은 '남편 따라 주인 따라 산 채로 지하로 간' 옛 순장 희생자들을 자신과 겹쳐본다('지하철은 참 신기하다').

카드빚으로 내비게이션을 충동구매했을 땐 자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신(神)을 종처럼 부리게 된 듯싶다가 금세 그 주종관계의 애매함을 느낀다.

'내가 있는 곳/ 그곳이 어디든 따라오는 나의 신은 나를/ 어디론가 끌고 끝없는 길을 나의 종은/ 가고 있어'('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 낱낱이 자본주의 문명에 포섭된 현대적 삶을, 시인은 이처럼 심상한 일상에서 포착해 여지없이 폭로한다.

불교나 인도 신화의 상상력을 보탠 극적인 시편도 여럿이다. 한미FTA 체결 소식이 실린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과, 그 신문에 불을 붙여 분신한 농사꾼 아버지의 비극을 신화적으로 그린 '아쉬빈의 후예들' 같은 시엔 해학을 넘어 슬픔에 닿도록 만드는, 제대로 된 풍자의 힘이 만져진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