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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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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입력
2008.04.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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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프 롤스 지음ㆍ박윤정 옮김/미래인 발행ㆍ343쪽ㆍ1만3,800원

38명의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28세의 여인이 강간 당한 다음 여러 차례 칼에 찔리더니, 마침내 죽었다. 어스름에 중산층 주택가에서 32분 동안 벌어진 사건을 두고 미국이 들끓었다. 처절한 비명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내다 봤지만, 밖으로 나가보기는커녕 경찰에 신고한 사람조차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심리학자들은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에 의한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효과”로 결론지었다. 사람들은 괜한 과민 반응으로 자신의 평정을 깨트리고 싶어하지 않을 뿐더러, 특히 타인들이 많을 때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덜 느끼게 된다는 심리 현상이다. “저를 비난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도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무수한 목격자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했다는 것이다.

1964년 뉴욕에서 일어났던 일이니, 지금의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하다고 누가 자신할 것인가. 영국의 대중적 심리학자 조프 롤스는 생생한 사례를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린 비밀의 문들을 따준다.

심리학 분야 중 일반인들에게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례 연구’의 실제가 제시된다. 책속의 16가지 케이스는 난해한 학문 용어 없이, 인간의 극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회에 적개심을 품은 부모 때문에 열세 살까지 의자에 묶여 살다, 우연히 발견된 지니는 언어 능력이 현저히 퇴화돼 있었다. 3.6m 방안에 갇혀 산 탓에 그 너머의 물체에는 초점조차 맞출 수 없었던 것이다. 인지심리학자, 언어학자들의 집중적 노력에도 지니의 언어 능력은 더 이상 개발되지 못했다. 언어 능력이 개발되는 결정적 시기를 놓친 탓에 인지력과 사회성마저 퇴화되고 말았다.

10여년의 일까지 꼬치꼬치 기억하는 남자는 그 놀라운 기억력으로 직장에서 주목 받고,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사물의 이미지화가 그 비밀이었다.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러나 행복과 무관했다. 기억의 단초가 되는 이미지들이 뒤죽박죽 됐을 뿐 아니라, 현실과 뒤엉켜 단순한 사실을 기억해 내는 일조차 힘들게 된 것이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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