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우열반 편성과 0교시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을 발표한 15일 오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 동안의 교육정책 기조가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두 정부를 계승한다는 통합민주당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언론에 대서특필된 16일 오전 최고위원 회의에서야 겨우 문제점에 대해 한두 마디 지적이 있었을 뿐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의 그 흔한 브리핑 하나 없었다.
요즘 민주당의 모습이다. 말로는 선명야당을 외치지만 뒷북치기에 급급하다. 수월성 교육, 수도권 규제 완화, 혁신도시 건설 중단 등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예견됐던 주요 현안이 속속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정부 여당에 끌려 다니며 허둥지둥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혁신도시나 수월성 교육 문제는 외면한 채 16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느닷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17대 국회 비준을 꺼냈다가 자중지란만 초래했다. 10년 만에 야당을 하는 정당치고는 전략도, 논리도, 투지도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이후 엿새 만인 15일 주요 당직자를 원내기획실과 정책위 등으로 복귀시켰다. 하지만 선거 패배에 따른 당 조직 축소, 다수 의원들의 낙선 등과 맞물려 여전히 어수선하다.
그만큼 현안에 대한 대처도 늦어지고 있다. 최근 참여정부 혁신도시 건설사업 때리기가 계속되고 보수언론에서 '백지화 검토'까지 보도됐지만 중앙당은 물론 해당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도 조용히 있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민주당은 17일 오후 부랴부랴 정책위ㆍ건교위 연석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미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이날 아침 "혁신도시 건설 재검토는 없다"고 한 발 물러선 뒤였다.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나마 최인기 정책위 의장은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통해 각종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정리했다. ▦혁신도시 건설 지속 추진 ▦한미 쇠고기협상과 FTA 비준 분리 ▦소수 엘리트 성공시대를 위한 학교자율화 반대 ▦추경 편성 반대 등이 골자다.
민주당의 속수무책인 형국에 대해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미리 각종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당 조직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당 원내 관계자)는 지적이 많다. 특히 민주당 당선인들의 보수화와 맞물려 "남은 4년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여기에다 당 차원의 전략적 대응능력이 부족하고 출자총액제,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대책 등 현안에 대한 당론도 모호해 당분간 민주당의 허둥대는 모습을 자주 봐야 할 것 같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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