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조각가 '솔 르윗'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조각가 '솔 르윗'

입력
2008.04.21 09:04
0 0

솔 르윗(Sol LeWitt, 1927-2007)은 1967년 "개념미술에 대한 단평"이라는 기념비적 글을 발표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미니-아트(최소화된 예술)가 최고다, 왜냐하면, 미니-스커트(최소화된 치마)를 입은 긴 다리의 소녀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썰렁한 농담을 던지는 이 글에서, 작가는 당시 신주류로 자리 잡은 미니멀리즘과 다른 방향, 즉 개념의 조작을 통해 형태를 결정짓는 예술의 추상적 방법을 제시했다.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선무부대에서 포스터를 그리기도 했던 솔 르윗은, 1960년부터 1965년까지 뉴욕 현대미술관의 도서 담당 직원으로 일하며 전후의 진보적 청년 예술가들과 교유했다.

그 청년들 가운데 댄 플레이빈, 로버트 라이먼, 로버트 맨골드 등이 있었고, 곧 그들은 미니멀리즘의 주요 작가로 각광을 받았다. 유의 깊게 관찰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는 법. 르윗은 곧 개념미술의 양상을 갖춘 미니멀 조각을 발표했다.

개방되거나 폐쇄된 알루미늄 사각형과 입방체, 그리고 그 변형태들을 조합하고 재조합하는 1966년작 <연속 프로젝트 no.1(a, b, c, d)> 이 바로 그것.

작가는 이렇게 부연했다. "미리 결정된 전제에 따라 작업하고, 주관성을 배제한 결과에 도달한다…연속적인 개념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는 아름답거나 신비로운 오브제를 만들지 않는다." 이 문장에 국한하자면, 그는 관념마저 기본 형태로 정리ㆍ반복하고자 애쓴 것으로 뵌다.

반면 1968년에 시작된 '벽 그림(Wall Drawing)' 연작은 작업을 조절하는 언술과 숙련된 조수에 의한 작품 제작이 명확히 구분되는, 완연한 개념주의(conceptualism)의 특질을 보여준다.

르윗에게 '타인에 의해 벽에 직접 시행되는 작업'이 '그림으로 그려진 계획'이 아닌, '언어로 구성된 계획'에 의한다는 점은 중요하다. 따라서 작가는 종종 동일한 지시문으로 종이에 구현되는 '잉크 그림(Ink Drawing)' 연작을 손수 제작했다.

그리고 "잉크 그림은 벽 그림의 재현이 아닌 것으로 계획됐다. 벽 그림도 잉크 그림의 재현이 아니다. 둘은 동등하게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작가는 언어가 그림을 지배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예컨대 '벽 그림 #65'(1971)의 경우 지시문은 이렇다: "네 가지 색상을 이용해 무작위로 그려진, 짧지 않고, 직선이 아니고, 교차하고 접촉하는 선들이, 벽의 전면을 덮으며, 최대의 밀도로 일정하게 분산되게끔." 언술된 개념이 결과를 이끄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행된 벽의 그림은 늘 조금씩 다르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그의 지시문을 이용해 벽 그림을 완성ㆍ소유할 수 있다. 집에 빈 벽이 하나 있다면, 색연필을 들고 한번 도전해 봐도 좋겠다. 야릇한 그의 말을 곱씹으며. "결과가 아름답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아요."

미술평론가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