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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낙타굼

입력
2008.04.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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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범 글ㆍ오승민 그림/산지니 발행ㆍ84쪽ㆍ8,300원

커다란 혹을 등에 이고 터덜터덜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 제 몸을 짓누르는 혹 만큼이나 무거운 슬픔을 담고 있는 커다란 두 눈에서는 금새라도 그렁그렁한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늘 고개를 앞으로 빼고 구부정하게 걷는 소년 한구름. 친구들은 조용하고 굼뜬 구름이 바로 그 슬픈 낙타를 닮았다며 ‘낙타굼’이라는 별명으로 놀려댄다. 친구들의 희롱에 구름이는 아무 것도 없는 등허리를 괜히 쓰다듬어 보기도 하는데….

친구들의 놀림에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는 구름이지만, 사실 소년의 일상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힘겹기만 하다.

어머니와 헤어진 아버지는 돈을 벌러 멀리 나가 늙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 크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까무룩 잠들어 있던 문간방에서 어느 날 “늙어 고생하는 제 에미 애비한테 애를 갖다 맡겨? 편히 모시지는 못할 망정 혹이나 붙여놓고 말이야” 라는 할아버지 친구의 말을 엿듣고 난 뒤로는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 인생의 혹에 불과한 것일까?

작가는 슬픔에 짓눌려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소년에게 세상을 헤쳐가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것은 낙타와의 대화를 통해서다. 환상 속에서 낙타를 만난 구름은 혹이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느냐는 자신의 질문에 “그러나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한 걸음 허투루 딛지 않으려 애쓰게 되거든. 혹이 있는 한 언제나 스스로 지켜갈 수 있는 것”이라는 낙타의 대답에 용기를 얻는다.

여기에 더해 낙타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네가 혹이라면, 그분들에게 너는 하루하루를 더 힘내어 갈 수 있게 해주는 선물 같은 거”라며 격려해준다.

<문제아> (1999) <새끼 개> (2003) <어미 개> (2003) 등에서 꾸준히 현실문제를 다뤄왔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세상을 헤쳐가는 지혜와 희망을 담은 잠언의 세계를 선보인다. 낙타의 격려를 통해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낙타굼 구름이의 모습에서 “슬픈 일이야 세상 어디에든, 누구에나 찾아드는 법이지만 정말로 슬픈 것은 그 일들이 아니라 그 앞에서 주저앉는 마음에 있을 것”이라고 귀띔하는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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