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진 16일.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지주 회장, 우리은행장, 경남은행장, 광주은행장의 사표가 금융위에 전달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금융위는 이들 기관장에 대한 법적 임면권한이 없으므로 사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는 해명자료를 냈다. 금융위가 일괄사표 대상이 되는 금융기관장의 범위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아 벌어진 해프닝이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보기에는 혼란이 심각하다. 정부가 임면권을 가지지 않는 주요 금융공기업 수장 조차 ‘덩달아’사의를 표명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정도로 사태의 후유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이 제청권을 가지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관장 외에 다른 금융기관장들의 사표를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와 기획재정부를 합쳐 대통령이 임명권을 가진 금융기관은 10곳 정도.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증권예탁결제원(이상 금융위), 수출입은행, 한국투자공사(이상 재정부) 등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다른 금융공기업 수장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속시원히 밝히고 있는 것도 아니다. 금융위 내부에서조차 말이 다르다. 금융위가 오락가락 하면서, 사표 낼 곳도 없는 우리금융지주 회장까지 사의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금융지주회장의 경우 회장추천위원회 이사회 주주총회 등을 거쳐 최종 선임되고 사표를 내더라도 이사회에 내야 한다.
다만 금융위 산하인 예보가 최대 주주(72.97%ㆍ일반주주 지분 27.03%)이기 때문에, 인사권에 있어 정부의 영향력에 놓일 수는 있다. 우리금융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장도 몇 단계 거치기는 했지만 정부의 영향권에 놓여있다.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기관이라도 안전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증권선물거래소와 같이 정부 지분이 없는 기관들도 정부가 누구를 밀어주느냐에 따라, 내부의 기관장 추천ㆍ선출 과정이 좌우돼 왔기 때문이다.
금융 공기업들은 금융위의 눈치만 살피고 있지만, 금융위는 청와대 눈치만 살피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재신임 과정과 결론이 금융위에 완전히 일임 돼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야 본격적인 검증작업을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고르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낙하산’논란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인사권 하나로 금융업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대한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금융공기업 기관장의 임기(3년)를 법률로 정한 것은 정권교체기마다 되풀이된 정실인사의 폐단을 시정해서 기관장들이 안정적으로 경영에 집중하고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가 금융공기업에 대한 부적절한 영향력 행사를 통해 ‘관치금융’의 구태를 재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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