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80년대 이후 중단했던 해외 농업개발 투자에 다시 나섰다. 해외 자원 확보에 생존이 걸린 우리지만, 먹거리 자원이 이렇게 전면에 부상한 것은 20여년만에 처음이다.
석유 가스 등 에너지에 밀려나 있던 식량문제가 곡물가격 폭등으로 전세계적 식량위기 경보가 울리고 나서야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의 4분의3을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안정적인 해외 공급선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방문길에서 해외 식량기지 확보 의지를 밝힌 만큼, 앞으로 정부의 농업개발투자는 한층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 정부 주도로 몽골에 식량기지 건설
18일 관련부처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몽골에 27만㏊의 광활한 땅을 임차, 식량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 동쪽 1,000㎞의 알흐골에 27만㏊를 50~100년 장기 임차, 식량기지로 활용하려는 계획이다.
국내 경작지의 15%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농업 기술, 인력교육 등 농업개발 지원에 200만달러(약 20억원)을 무상원조하는 대신, 해당 경작지를 장기 임대하겠다는 것. 내달부터 사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간다.
해외농장 건설에 정부가 지원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법제화도 추진중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해외 농장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에 농지관리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올해 안에 ‘농지관리기금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또 올해부터는 민간이 해외 농업개발 진출을 위해 사전 현지환경조사를 할 때도 총 2억원을 지원한다.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해외 식량기지 확보도 강구 중이다. 중국 호주 뉴질랜드 등 농산물수출국과 FTA 협상을 할 때 농업투자도 협정에 포함, 민간의 해외 농업투자를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 해외농업진출 어디까지
최근 정부의 움직임은 20년 넘게 폐기하다시피 했던 해외 농업기지 건설 프로젝트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리나라는 1960~70년대 정부 주도로 중남미에, 1980~2000년대초 민간 주도로 미국 중국 연해주(러시아)에 농업개발투자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60년대 인구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이민을 장려하면서 남미 지역에 농업이민거점을 집중 조성했다. 68년부터 81년까지 아르헨티나의 야타마우카(2만894㏊) 산 하비에르(2,714㏊) 루한(11㏊), 파라과이 산 페드로(1,500㏊), 칠레 테노(185㏊) 등 5개 해외농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땅을 매입하고 나서야 영농부적지인 사실이 확인돼 방치하고 이주자들이 이탈하거나, 해당국가의 이민정책 때문에 실제 농장 경영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 3개 농장은 매각 처분됐고, 현재 야타마우카와 테노 등 2개 농장만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소유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민간의 해외 농장 투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국내 민간업체의 해외농업 진출 및 추진은 러시아 12건, 중국4건, 인도네시아 5건 등 28건으로 집계됐으나, 이 중 40%인 11건은 이미 철수한 상태다.
■ 해외식량기지 건설 성공하려면
해외식량기지 건설은 매력적인 만큼 위험도 높다. 대통령이 연해주와 동남아를 후보지로 거론하면서까지 해외 식량기지 건설의 의지를 밝혔지만, 농지 확보부터 가시적 성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3년을 잡아야 하는 장기 투자이기 때문에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국제곡물시장에 대한 정보 분석, 해외 농장 확보 및 생산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정부 지원 시스템이 확충되지 않으면,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해외로만 눈을 돌릴게 아니라 국내 경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겨울에 노는 80㏊의 땅 등 국내 유휴지부터 활용하자는 것이다.
성진근 충북대 명예교수는 “해외식량기지 건설은 전세계 유통망을 장악한 곡물메이저의 횡포나 현지 국가 사정의 변화에 대응해야하는 등 리스크가 크지만, 우크라이나 같은 체제전환국은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농지 임대ㆍ매입 등 직접투자보다는 생산능력이 있는 농장과 계약재배 등 공동투자를 통해서도 식량 공급선 확보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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