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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동북아공동체와 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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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동북아공동체와 EU

입력
2008.04.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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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외신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다. 유럽연합(EU)에서 각 회원국 언어(23개)로 문서나 회의 진행을 번역 또는 통역하는 비용이 1년에 무려 11억 유로(약 1조7,000억 원)가 들었다는 것이다. EU 1년 예산의 1%에 해당한다고 한다.

2006년에 번역된 문서만 150만 쪽 분량. 본회의라도 열리면 23개 언어마다 모두 3명씩 69명의 통역자가 나와 분주하다. 영어 만능주의자들 생각에는 영어 하나로 하면 될 걸 뭐하러 그렇게 많은 돈을 써가며 복잡하게 하느냐 싶겠다.

■ 그런데 그 이유를 들어보면 EU가 국가적 이익을 위한 단순한 연합체가 아니라 진정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레오나르드 오르반 EU 언어 담당 집행위원은 “다언어 사용은 EU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비용”이라고 했고, 칼 뢴토르 EU 번역 담당 사무국장은 “모든 사람이 모국어로 정보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EU에서 가장 목소리 큰 나라는 역시 영국 프랑스 독일이지만 누구도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독일의 전쟁 책임을 물고 늘어지는 나라도 없다.

■ EU 통ㆍ번역 얘기에 눈길이 간 이유는 요즘 지식인사회에서 동북아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부쩍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일본 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경제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안보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한국에서는 이미 2001년 10월에 동북아지식인연대라는 단체까지 생겼다. 요즘에는 특히 3국의 지식인들이 교류와 연대를 통해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화합해서 공동체를 만들자는 목표 자체야 나무랄 일이 아니겠다. 그런데 좀 허황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 세 나라가 유교적 가치와 한자문화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유교적 가치라는 것이 과연 현대 민주주의와 인권 개념보다 앞세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인지, 의사소통은 전혀 안 되지만 일부 모양이 같은 글자를 쓴다는 것이 도대체 의미 있는 공통점인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중일의 공통점보다는 한미일의 공통점이 훨씬 크다. 특히 중국의 경우 ‘민간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성립조차 어렵다.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는 늘 복병이다. 다른 것을 억지로 통합하려고 할 때 오히려 부작용과 환멸이 올 수 있다. 교류는 좋지만 낭만주의는 금물이다.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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