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웅 삼성 특검팀이 17일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99일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짧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며 출범한 특검팀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매각 사건 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 이건희(66) 삼성그룹 회장 등 10명을 배임 혐의로 기소하고, 삼성 전략기획실이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운용하면서 1,128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수천억원의 회사 손실을 초래하고 세금을 포탈한 이 회장 등 경영진에 대해 불구속 기소 결정한 데 대해서는 적잖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특검은 "경제상황 등을 감안했다"며 고육지책이었음을 강조했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특검팀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 이 회장이 사전ㆍ사후에 보고를 받고 승인한 것으로 판단, 최소한 '묵시적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대목이다. 또 당시 그룹 비서실(현 전략기획실)이 주도적으로 계획한 점도 밝혀냈다. 이에 따라 같은 사건으로 기소돼 2심까지 유죄 판정을 받은 에버랜드 전ㆍ현직 사장인 허태학ㆍ박노빈씨와의 공모 혐의를 적용, 이 회장과 당시 비서실 소속이었던 이학수 부회장,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특검팀은 또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의 경우, 이 회장이 계획 추진은 물론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이학수 당시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 재무팀장의 BW 인수 동참을 지시하는 등 적극 개입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룹 경영권 승계작업 과정에서 그 동안 삼성 측이 부인하던 이 회장의 개입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의 또 다른 갈래인 'e삼성'사건에서는 모든 피고발인을 무혐의 처분했다. 삼성 계열사들이 부실로 판명난 e삼성 등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소유 벤처기업 지분을 매입하면서 '이사회 의결'이라는 정상 절차와 합리적 평가를 거쳤다는 게 근거다. 또 서울통신기술 CB 헐값 발행 의혹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차명계좌 이용한 비자금 조성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비자금을 조성ㆍ운용했다는 의혹은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10월 기자회견에서 4개의 도명(盜名)계좌를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특검팀은 이를 토대로 삼성 전ㆍ현직 임원과 주요 인물의 직계 가족 등 3,090명을 선정, 이들 명의로 삼성증권에 개설된 계좌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기준은 삼성ㆍ신세계ㆍCJ그룹 계열사끼리만 거래된 계좌, 배당금 등이 입금된 후 곧이어 1원 단위까지 현금으로 출금된 계좌, 주식을 현물로 입ㆍ출금한 계좌, 비밀번호가 '0000,1122'등인 계좌 등이었다. 그 결과 특검팀은 삼성 임직원 486명의 이름으로 개설된 1,199개의 차명계좌를 찾아냈다. 이 계좌에 들어있는 이 회장의 재산은 4조5,000억원(삼성생명 차명주식액 포함)이었다.
이어 1,199개 계좌 중 삼성전자,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 7곳의 주식거래가 있는 증권계좌 341개(258명 명의)를 선별해냈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라면 3%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가 주식을 매매할 경우 최고 20%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거래차익만 5,634억원. 이에 따라 특검팀은 이 회장에 대해 1,128억원의 조세포탈과 대주주 지분변동 미신고로 인한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계좌들에 들어있는 자금의 원천을 확인하는데는 실패했다. 이 계좌들이 대부분 금융전표 보존기한(5년) 이전인 2002년 전에 개설된데다, 입출금도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결국 원천자금이 모두 이 회장의 상속재산인지 또는 회사 비자금이 섞여 있는지 등은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2002년 대선자금 수사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이 불법 대선자금용으로 구입한 840억여원의 무기명 채권 중 이전 검찰수사에서 밝히지 못한 80억여원의 행방은 특검팀도 끝내 찾지 못했다. 삼성이 대선 직후 참여정부에 당선축하금을 건넸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검은 증거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특검팀은 2002년 대선 당시 삼성 측으로부터 300억원 어치의 채권을 건네받아 한나라당에 넘긴 서정우 변호사, 김영일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을 소환 조사했다. 특검은 80억여원 가운데 약 13억원을 김 전 총장이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으나, 이미 대선자금 수사로 처벌을 받아 사법처리 대상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특검팀은 당시 삼성이 정치권에 제공하고 남은 약 440占?어치의 채권을 2005년 수사 당시 검찰에 제출했다 돌려받은 뒤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가 당시 수사과정에서 이 채권이 노무현 대통령 측에 전달됐다 반환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문 감식까지 시도했다가 식별 불능으로 결론이 났던 점 때문에 특검팀은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했다.
박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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