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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영화프로젝트

입력
2008.04.16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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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분위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영화를 만드는 주체가 있다. 각종 홍보용 영화를 만드는 국가기관들이다. 관급품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풍기는 이 영화들은 교육청을 통해 보급되거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훈 활동으로 상영된다. 그런데 시사회까지 하고 극장을 통해 영화를 개봉하는 기관이 있다.

분명 나랏돈으로 만든 영화지만 ‘사제’ 영화와 똑 같은 관람료를 받는다. 국내외 영화제에 줄줄이 초청도 된다. 엔딩 크레딧 첫머리의 ‘제작’에다가 버젓이 기관 명칭까지 박아 넣는 이 곳은, 바로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위가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2002년. 사회의 인권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 콘텐츠를 찾다가, “적당한 게 없어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남규선 프로듀서)는 게 이유다. 첫 프로젝트가 따낸 예산은 단돈(?) 3억원. 하지만 박찬욱, 임순례, 박광수, 여균동 감독 등이 기꺼이 참여했다.

자신에게 배정된 5,000만원의 제작비를 무시하고 해외 로케이션까지 감행했던 박찬욱 감독은 수천만원의 자비를 ‘박아 넣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첫 옴니버스 프로젝트가 <여섯개의 시선> (2003년). 전국 57개 스크린에서 개봉됐고 30여개 영화제에 초청됐다.

이후 국가기관답게 회계연도를 지켜가며,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 <시선 1318> 까지 포함하면) 모두 여섯 편의 영화를 연년이 제작했다. 부족한 예산에 개런티를 뱉어내기 일쑤였지만, 이현승 류승완 정지우 장진 정윤철 김태용 방은진 등 이름있는 감독들이 줄줄이 참여했다.

모든 완성작은 민간 배급사에 의한 P&A(프린트 및 마케팅)를 거쳐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됐다. 여타 개봉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배급 계약서에 카피레프트(독점적인 저작권 부정) 조항이 들어 있다는 점. 교육용으로 필요할 경우 누구나 비디오로 상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인권위가 제작하는 영화는 인권 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갖는 고정된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코스타 가브라스의 <제트> 같은 강렬한 정치 의식과 리얼리즘을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인권위 영화 속의 인권은 일상의 범주에 속하는 것들이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규정된 19가지 차별 유형이 소재가 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감독들은 국적, 성정체성, 장애 등 각종 우리 주변의 차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자신의 이야기를 엮게 된다.

감독들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이, 옴니버스를 이루는 영화들은 개성적이고 꽤 재미있다. 의도된 비정치성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인권위로서는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관제영화’의 관습성에서 탈피, 7,000원의 관람료가 아깝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 제작자의 입장이었으니까.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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