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8일 싱가포르 회동은 북한 핵 신고문제의 막바지 고비다. 시한이 지난해 말에서 이미 3개월이나 넘긴 데다 “더 이상 북미접촉이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힐 차관보의 1일 경고처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싱가포르 회동은 핵 신고 타결에 이은 핵 폐기 협상으로 선순환 하느냐, 아니면 위기로 치닫느냐는 갈림길이며 크게 보면 한반도 정세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단 지난달 중순 있었던 제네바 회동의 합의 실패, 그리고 그 이후의 답답한 국면을 감안하면, 싱가포르 회동 자체를 사태의 진전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 정부관계자도 “타결 가능성이 50% 이상은 될 걸로 본다”고 기대 섞인 전망을 하고 있다. 물밑 접촉에서 뭔가 진전된 내용이 있다는 뉘앙스다.
김 부상이 지난달 초로 예정됐던 베이징 북미회동을 무산시키고 제네바 회동에서도 미온적 자세를 취했을 때만해도 북측이 과거의 핵 문제, 즉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 개발과 시리아 핵 이전의 인정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북한 외무성이 지난달 말 두 의혹을 부인, 핵 협상 전체가 파국을 맞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측은 내밀하게 뉴욕 유엔대표부 김명길 공사를 통해 미측과 협의를 계속해왔고 그 결과가 싱가포르 회동인 것이다.
이번 회동의 핵심은 UEP와 핵 이전 등 두 사안을 어떤 형태로 신고서에 담을 것이냐다. 북측은 부인하거나 모호성을 유지하려는 자세고, 미측은 북측의 인정을 받아내려는 입장이다. 북측은 두 의혹을 인정하면 1994년 제네바 핵동결 합의의 파탄책임을 안게 되는 점을 우려하고, 미측은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등 관계정상화조치에 대한 의회 등 미국 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이런 딜레마가 양측이 줄다리기를 하는 배경이다.
정부소식통은 “미 행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위해 의회에 낼 보고서에 신고내용을 첨부해야 한다”며 “두 의혹에 대한 축척된 정보로 볼 때 북측이 어떤 형태로든 인정을 하지 않고는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북측이 두 사안의 의혹을 인정하는 부분에 대한 일부 문구 조율만 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이 늘 그렇듯 낙관하기는 이르다. 우선 김 부상이 지원확대 등 추가 요구를 내놓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북측이 남북관계의 냉기류를 걸어 북핵 협상을 지연시킬 수도 있어 기대는 높지만 속단은 이른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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