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의 책] 홀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의 책] 홀림

입력
2008.04.16 00:21
0 0

성석제 / 문학과지성사

총선 끝나더니, 특별당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의 공천 대가를 냈다는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말썽이다. 노름판 베팅 뺨친다. “그건 노름보다도 수준이 낮은 게임이다… 노름에도 도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 요즘 정치가들, 사업가들, 마피아들 너무 놀 줄 모른다. 먹을 줄만 알고 쌀 줄은 모른다. 그래서 차곡차곡 모으면 많이 딸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이다. 죽는다. 숨이 막히고 뚱뚱해져서 추하게 죽는다.” 성석제(48)의 소설집 <홀림> 에 실려있는 단편 ‘꽃 피우는 시간 _ 노름하는 인간’에서, 세계 최고의 도박사 피스톨 송이 노름 10계명을 설파하며 내뱉는 일갈이다.

<홀림> 이 나온 것이 벌써 10년 전이지만 다시 읽어도 웃음이 큭큭 나온다. 유쾌하다. 성석제 식 냉소와 풍자의 힘이다. 그는 여기서 ‘꾼’의 세계를 다룬다. 노름꾼, 춤꾼, 술꾼 등이 그들이다. 꾼들을 통해 본 인간학이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술을 마시느냐? 술을 마시면 어차피 반쯤 죽는 거라구. 사는 게 죽는 것처럼 힘든 사람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래도 막상 죽을 수는 없는 사람들, 술로 반은 죽지만 반은 사는 거야. 예술, 그것도 반쯤 이승을 떠나는 거 아니오.” 이건 술꾼의 철학이다(‘해방 _ 술 마시는 인간’).

“세계는 ‘춤과 춤방, 남자, 여자 네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다”던 왕제비 춤꾼은 꽃뱀에게 일격을 당한 뒤 ‘원고지 앞에 돌아와 알몸으로 앉아’ 자전적 소설을 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폼만 잡는 한심한 소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 이때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 여자들을 상대해왔듯이 소설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련다”라고 다짐하면서(‘소설 쓰는 인간’). 이 작품들 취재하러 노름판, 춤판 가 보고 술도 죽지 않을 만큼 마셨다던 작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꾼들의 세계에는 공통적으로 어떤 고급한 미학, 심미적인 것이 있더라”고 말했었다. 한심한 정치판에는 없는 미학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