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만 총통선거 취재 때 일이다. 선거 이틀 전인 3월 20일 타이베이(臺北)에 도착하고 나서 서방 언론 보도에 적잖이 당황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에서 20% 이상 앞서던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가 3월 14일 발생한 티베트(시짱ㆍ西藏자치구) 사태로 고전한다는 보도가 봇물을 이뤘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들은 티베트 사태가 대만인들의 대(對)중국 공포심을 일깨워 마 후보보다 중국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셰창팅(謝長廷) 민진당 후보의 지지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21일 타이베이발 ‘티베트 긴장이 타이완을 뒤흔든다’는 기사를 통해 “20%의 리드를 지키던 마 후보가 10%를 까먹고 한 자릿수 접전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크게 빗나간 대만선거 예측
이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마 후보는 득표율에서 16.8% 앞서는 압승을 거뒀다. 티베트 사태는 경제 살리기를 열망하는 대만 유권자의 정서를 거의 변화시키지 못했다. 대만 총통 선거 보도는 서방 언론이 현지인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입맛에 맞는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금 중국에서는 반 서방언론 선풍이 분다. CNN 등이 네팔에서 진행됐던 승려들의 반중 시위를 티베트에서 발생한 시위처럼 보도했다는 중국측 보도에 “미 제국주의는 물러가라”는 댓글이 수없이 달려 있다. 중국인들은 중국 정부가 암암리에 유도한 이런 분위기에 깊은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특히 초기 티베트 시위의 ‘행태’에 대해 서방 언론이 침묵한 데 분노하고 있다. 3월 14일 라싸(拉薩) 시위의 양상은 폭동에 가까웠다. 당시 티베트인들은 한(漢)족과 위구르 회족들의 신체와 상점들을 공격하거나 방화했다. 티베트인의 공격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서방 언론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사태 당시 우연히 티베트에 체류 중이던 유일한 서방 기자인 제임스 마일스 이코노미스트지 기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똑같은 증언을 했다. 중국의 일반인들은 물론 해외 화교들조차 이번 사태를 폭동으로 규정한 중국 정부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기인한다.
되짚어보면 초기 티베트 시위는 일반 중국인들의 공감을 얻는 데 철저히 실패했다. 이는 향후 티베트인들의 자주운동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사태 초기 과격 시위 중지를 호소한 달라이라마의 발언은 시사점이 크다.
물론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막강한 공권력이 존재하는 중국에서 티베트인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점은 감안돼야 한다.
■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보도
대의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해온 서방 언론은 이번 사건에서 대의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BBC방송 기자 험프리 헉슬리는 “서방에게 티베트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티베트는 종교적ㆍ문화적 압제의 상징으로 다가온다”고 밝혔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의 압제와 티베트인들의 저항이라는 도식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홍콩 칼럼니스트 프랭크 칭은 “티베트 체류 중이던 마일즈 기자의 보도가 사태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냈다는 점을 중국 당국이 명심할 필요가 있다”며 티베트에서 외신 기자들을 추방한 중국 정부의 자업자득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상을 서방언론에 보여 주었다고 해서 보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순진해 보인다.
이영섭 베이징 특파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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