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결혼한지 12년 된 주부입니다. 그래도 태어난 건 1975년 11월이에요. 조금 일찍 결혼했거든요.
제가 둘째를 낳은 건 7년 전입니다. 아무리 둘째는 힘 한번만 주면 ‘쑴풍’하고 나온다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되나요? 첫 아이보다야 조금 수월하지만 그래도 하늘이 노래지는 그 기분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는 거 아시죠? 이럴 때 가족들이라도 곁에 있다면 통증이 조금 덜 할 텐데…. 친정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신데다가 그날 따라 남편은 생전 안 하던 야근을 한다고 하고, 시어머니는 동네 분들과 온천관광을 가시고, 병상에는 저 혼자 있었습니다.
뭐 식구들이 있건 없건 산통은 혼자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 만큼 저는 혼자 열심히 산통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애 낳아보신 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힘 좀 주려고 하면 병원 관계자 분들이 내진 한답시고 들어와서는 리듬을 깨놓기 일쑤잖아요. 어디 그 뿐인가요?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산모님!! 애기 처음 낳는 것도 아니면서 뭘 이렇게 뜸을 들여요?”하면서 구박도 서슴지 않잖아요.
“아니에요. 지금 얼마나 힘든 데요”하고 대답하면, “대답하는 거 보니까 아직 멀었네요. 그렇게 내숭 떨듯이 힘 주다가는 애기 안 나옵니다. 아무도 없으니까 힘 좀 팍팍 주세요. 방귀 껴도 됩니다 아셨죠?” 이러는 겁니다. ‘아니 저 간호사가 아무리 지가 애 낳는 거 아니라지만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할 산모한테 이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그리고 누구는 뭐 안 낳고싶어서 안 낳나? 나도 빨리 낳고 나서 시원하고 가뿐한 기분 느끼고 싶은데…. 어디서 염장질이야!!!’
하지만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 간호사하고 말싸움 해봤자 옴짝달싹 못한 채 누워 있어야 하는 제가 불리할 것 같아 저는 조용히, 혓바닥 한쪽을 어금니로 꽉 깨물고서 물었습니다. “간호사 언니 아직 결혼 안 했죠? 결혼해서 애 낳아봐요. 그때 내 기분 이해할 테니까.”그런데 얄미운 간호사 하는 말, “걱정 마세요. 맨날 보는 게 이건데 이깟 애 하나 ‘쑴풍’ 못 낳겠어요?”하면서 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사 참 우습죠? 저를 그렇게 구박하던 간호사를 오빠의 상견례 자리에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올케 감으로 말입니다. 처음에는 세월이 많이 지나 잘 알아보지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7년 전 출산을 마지막으로 산부인과 갈 일이 없었거든요. 저는 혹시나 하고 물었습니다. “혹시 00산부인과에 계시지 않으셨어요?”설마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는데, 역시 맞더군요. “어떻게 아세요? 저 거기 그만둔 지 조금 됐는데…?”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자기가 나한테 한 ‘만행’때문인지 조금 뜨악한 표정을 짓더군요. “제가 거기서 둘째를 낳았거든요. 그때 언니가 저 담당이었는데, 기억 못하시는구나. 하긴….”“예?”새 언니 될 사람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사돈 내외분에, 오빠에, 언니, 그리고 남편까지 있어서 제가 참았습니다.
하지만 새삼 얼굴을 다시 보니 그때의 그 핍박과 구박과 무시와 괄시가 팍팍 살아 나는 거에요. 집에 와서 옷을 갈아 입으면서 저는 저도 모르게 ‘만세삼창’을 외쳤습니다. “만세!!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일이야. 뭐, 내숭떨지 말고 애를 낳으라고? 그래 너 두고 보자….”
그로부터 일 년 뒤 새 언니가 드디어 애를 낳게 되었습니다. 산통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김치 버무리던 장갑도 벗어 던진 채 한걸음에 병원까지 달려갔어요.
병원입구에 들어서니 애를 낳는 건지, 잡는 건지 누군가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습니다. “남들 안 낳는 애를 낳나? 누가 이 야단법석이야?”하며 들어갔는데 그 요란을 떠는 사람이 다름 아닌 새 언니더군요. 그 언니 옆에서 오빠는 언니보다 더 초주검이 되어선 벌벌 떨고 있다가 저를 보자마자 “네가 좀 어떻게 해봐. 이러다 네 언니 죽겠다”하는 겁니다.
아, 그때의 오빠 얼굴은 팔불출 딱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빠의 얼굴너머로 7년 전 저를 구박하던 그 간호사의 얼굴이 겹쳐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남들도 다 이렇게 애 낳거든요? 산부인과에서 일해 놓고 그것도 몰랐어요, 새 언니? 힘을 입에 주지 말고, 배에 줘야죠. 고함 질러봤자 힘만 빠진다닌까요. 그러다 득음(得音)하겠어요.”
“음~~ 음~~ 악~~!” 그러게 앞일은 모르는 법인데, 열심히 힘주고 있는 산모한테 내숭이니, 아직도 멀었다느니 구박은 왜 했나 몰라요. “언니 애 낳을 때는 내숭 떨면 안 되요. 그냥 힘을 팍팍 줘요. 오빠 있어도 방귀 껴도 되요.”저는 새 언니의 그 ‘말폭탄’을 고스란히 돌려줬습니다. 물론 둘째 때를 생각해서 다는 돌려주지 않고 조금 남겨두었어요. 인생사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걸 언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도 12시간의 긴 진통 끝에 건강한 조카를 제 품에 안겨준 새 언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해봅니다. 언니에게 둘째 조카도 빠른 시일 내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제가 “애 처음 낳는 것도 아니면서 웬 내숭이에요?”하면서 구박할거 아니에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들 제발 산부인과에 오셔서 산통 겪는 산모에게 “얼른 낳아버려라”고 독촉 좀 하지 마세요.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게 독촉한다고 나오는 과태료가 아니거든요.
전남 여수시 신기동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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