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동안 국내 간장업계 선두를 지켜온 샘표식품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1997년 박승복 회장과 이복동생인 박승재 전 사장과의 경영권 분쟁 이후 10여년 만이다. 이번에 샘표 경영권을 위협하는 곳은 사모펀드인 우리투자증권 마르스 1호.
■ 숙질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씨
15일 업계에 따르면 샘표 지분 29% 가량을 보유 중인 우리투자증권 마르스 1호가 4일 샘표 주식 89만305주를 20일간 공개 매수해 과반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신고서를 금융감독위원회에 냈다. 마르스 1호 측의 계획대로라면 50%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 만은 않다. 현재 박 회장의 아들인 박진선 사장 등 최대 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지분은 31.46%로 마르스 1호(29.97%)보다 많다. 더욱이 공개 매수에 응하면 시세차익의 20% 가량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공개 매수가(3만원)보다 주가가 크게 낮지 않으면 주주들이 주식을 넘길 이유가 없다.
이날 샘표식품 종가는 2만9,750원으로 공개 매수에는 매력적이지 않다. 샘표 측은 전통적인 우호지분까지 감안하면 55% 정도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사장도 이날 서울 충무로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특수관계인, 우호주주 등을 포함하면 50% 이상 확보가 무난하기 때문에 경영권 방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사장 입장에선 마르스 1호와의 경영권 분쟁이 과거 상처를 다시 후벼 파는 고통일 수 밖에 없다. 97년 당시 기획이사였던 박 사장은 1,000억원에 달하는 공장 부지를 팔아 재무 건전화와 신사업 투자에 쓰자는 의견을 냈지만, 박승재 전 사장 측의 극구 반대에 부딪쳤다. 급기야는 표 대결 끝에 박 사장이 경영권을 넘겨 받으면서 숙질 간의 분쟁은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그런데 2006년 9월 우리투자증권 사모펀드 마르스 1호가 샘표지분 24.1%를 확보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더군다나 지분을 마르스 1호에 통째로 넘긴 당사자가 박승재 전 사장 측 인사들로 드러났다.
마르스 1호는 그때만해도 추가 지분 확보는 물론, 적대적 인수ㆍ합병(M&A) 시도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샘표 미국 현지법인의 투자손실 등을 들어 법원에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낸데 이어 3월에는 정헌채, 서정원씨 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해 줄 것을 제안하는 등 경영참여 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분도 29.97%까지 늘렸다.
당황한 샘표 측은 친ㆍ인척 등 특수관계인을 동원해 지분을 31.46%까지 늘리면서 가까스로 최대주주 변경을 막았다. 이후 마르스 1호는 지난달 19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제안한 사외이사 선임건이 부결되자 4일 공개 매수를 선언하면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가 정신 훼손 VS 기업가치 제고 위한 투자
박진석 사장은 마르스 1호의 지분 확대에 대해 “분명한 적대적 M&A이고,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어느 기업보다 깨끗하게 경영을 하고 있는데도 마치 부도덕한 기업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르스 1호가 지분 확대 이유로 든 인력 이탈, 공장부지 개인 소유 등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사장 취임 때 200명이던 인원이 500명으로 늘었고, 자연스런 물갈이는 있었지만 핵심인력의 대거 이탈은 없었다”며 “공장 부지를 아들 명의로 산 것도 공장총량제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그나마 순환출자 등으로 적대적 M&A에 대응할 방법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전무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하루 빨리 도입돼야 기업가들이 마음 졸이지 않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마르스 1호 측은 “샘표는 브랜드가치에 비해 영업이익이 형편없고, 직원들 이직으로 조직이 와해되고 있다”며 “우리는 재무적 투자자로 경영에 참여해 기업가치를 올리려는 입장이지만, 회사 측이 이를 묵살하고 있어 지분을 50%까지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 샘표-마르스 1호 간 경영권 분쟁 일지
▲1997년 4월-박승복 회장, 이복동생인 박승재 전 사장과 경영권 분쟁 끝에 아들인 박진선씨에게 경영권 승계
▲2006년 9월 -박승재 전 사장 측 15명, 샘표지분 24.1%를 우리투자증권 마르스 1호 사모펀드에 넘김. 마르스 1호, 추가 지분 확보 및 적대적 M&A 의사 없다고 밝힘
▲2007년 2월 -마르스 1호, 샘표 미국 현지법인이던 'Mr.Kimchi'에 대한 투자 의혹 등 이유로 샘표 회계장부 열람 요청 및 가처분 신청
▲2007년 3월 20일-마르스 1호, 21만9,401주 추가 매입해 29.06%(129만1,469) 확보 공시
▲2007년 3월 21일-마르스 1호,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2명 선임 제안했으나 부결
▲2007년 4월 -마르스 1호, 지분 29.97%(133만1,695주) 확보했다고 공시. 당시 최대주주 지분은 31.46%(139만7,943주)
▲2007년 8월 -샘표, 법원 결정에 따라 마르스 1호에 5년치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
▲2008년 3월 -마르스 1호,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1명 선임 제안했으나 또 다시 부결
▲2008년 4월 -마르스 1호 , 샘표 주식 공개 매수해 지분 과반 확보 선언
안형영 기자 truestory@hk.co.kr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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