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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정년 퇴직 후 다시 돌아왔다… 현대重 '베테랑 조선공'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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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정년 퇴직 후 다시 돌아왔다… 현대重 '베테랑 조선공' 3인

입력
2008.04.1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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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1개월 간 땀 흘렸던 직장을 떠난 지 꼭 3일만에 돌아온 베테랑 조선공 이건옥(59) 기장. 동료 부장의 절반 월급을 받으면서도 웃으며 일하는 49년생 강기열 선실 관리 기정. 그리고 골리앗 크레인을 운전하며 30대 못 지 않은 열정을 뿜어내는 만 60세 대리 곽운호 기원.

세계 최대 조선사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정년 퇴임 후 다시 본업에 복귀한 ‘할아버지 사원’들이 늘고 있다. 조기 퇴직과 명예퇴직이 일반화된 요즘 이곳에는 정년을 채우고 퇴임한 후 다시 촉탁직(계약직)으로 복직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 290여명에 이른다.

30여년을 일밖에 모르다 은퇴해 손주들과 소일하며 보내야 할 이들이 현장에 복귀해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는 이유가 뭘까. 이들은 하나같이 “회사가 불러줘서 왔을 뿐”이라고 겸양을 표시했지만 정작 현대중공업측은 “30여년간 현장에서 익힌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조선소를 짓은 후 현대중공업을 세계 제일의 조선사로 키워낸 산증인들인 이들 노인 숙련공은 실제로 회사의 큰 재산이다.

현대중공업은 출발할 때만 해도 조선업은 생소했고,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74년 선박 철목부에 입사한 이건옥씨는 “한 친구가 조선소에서 같이 일하자는 말을 했을 때만 해도 ‘조선이 북조선, 남조선할 때 그 조선이냐?’고 물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같은 해 선박의 선실생산부에 입사한 강기열씨도 “당시 자전거도 귀하던 시절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사원들과 막걸리를 먹으며 ‘당신들 앞으로 자가용 타고 출퇴근 할거니까 열심히 일해라’고 한 말을 듣고 웃으며 넘긴 적이 있는데 진짜 그런 시절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과거 향수에 젖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현대중공업의 핵심 인재로 현장 경험을 후배들에게 전해 주기 위함이다. 현대중공업 조영수 문화홍보팀 차장은 “조선업의 기술력은 현장 기술자들의 노하우에 좌우되는 만큼 은퇴하신 분들이 다시 현장에 돌아왔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30여년을 현장을 누빈 이들의 노하우는 첨단 기계보다 소중한 회사 자산이다. 현장에서는 이들은 ‘기술의 달인’으로 통한다. 올해 초 선실생산 2부에 재입사한 강씨는 “선실안에 들어서는 순간 문의 이음새가 제대로 됐는지, 선실 배치는 선주의 요구에 적합하게 설계됐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골리앗 크레인을 운전하고 있는 곽씨도 “골리앗이 움직이는 소리만 들어도 어느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상대 크레인의 속도는 적절한지를 잡아낼 수 있다”고 전했다.

아무리 기계가 좋다고 해도 이를 조작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없으면 기술은 무용지물이라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특히 중공업의 특성상 한 사람의 조그마한 실수가 수십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퇴임 후 현장에 돌아온 만큼 후배들과 편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은퇴하기 전에는 상관이었지만 지금은 계약직 신분이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 이씨는 “현장에 있는 후배들이 나이 많은 내 앞에서 담배 하나 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휴식시간에는 몰래 자리를 비워 될 수 있으면 짐이 안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강씨도 “회식 시간이면 젊은 사람들 편하라고 소주 한잔하고 일찌감치 자리를 비워준다”고 전했다.

그래도 일에 관해서는 후배들에게 아쉬운 점이 많다. 이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보다 많이 배워서 그런지 일은 빨리 배우지만 정성이 좀 부족한 것 같다”며 “작업장에서는 한 명이 비면 나머지 조원 4명이 일을 하지 못하는 시스템인데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강씨도 “최근 조선업이 너무 잘 나가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 지내는 것 같다”며 “1987년 노사분규와 조선업 불황이 겹쳤을 때는 거의 10년간 신입사원을 뽑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도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대만족이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씨는 “계약직으로 봉급이 절반 줄었지만 이 나이에 정든 직장에서 계속 일하는 것만 해도 고마운 일 아니냐”며 “그래서 그런지 손주들도 할아버지가 늙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3년 계약직이지만 이들의 일 욕심은 젊은이들 못 지 않다. ‘언제까지 일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강씨는 “우리는 작업장에서 30여년을 지내다 보니 현장이 집보다 편한 사람들”이라며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다면 힘 닿는 데까지 하고 싶다”고 답했다. 곽씨도 “돈을 벌고 싶어서 현장에 온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싶어서 온 것”이라며 “계약기간을 한번 더 채우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울산=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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