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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性] <1>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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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性] <1> 노인

입력
2008.04.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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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커지는 노년의 아우性

성적 욕망조차 가져선 안되는 존재로 치부되던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이른바 한국 사회 ‘마이너리티(minority)’의 성(性)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의료기술 발달과 평균수명 연장, 국내 유입 외국인 노동자 수 급증 등으로 이들 계층의 성적 분출 욕구이 함께 높아지면서 관련 성범죄도 폭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소수ㆍ소외 계층의 성 문제를 재조명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13일 경찰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과 지난해 100만명을 넘어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범죄는 갈수록 급증 추세다. 노인의 성폭행 범죄는 1996년 100건에서 2006년 423건으로 10년 새 4배 이상 증가했고, 전체 성폭행 사건 중 노인 범죄 비율도 96년 1.3%에서 4.1%로 늘어났다. 외국인 노동자의 성폭행 범죄도 2003년 49건에서 지난해 118건으로, 4년만에 무려 2.5배나 늘었다. 이 같은 증가율은 같은 기간 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증가율(67만명→103만명, 53%)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이다.

노인과 외국인 노동자 등의 임질ㆍ매독 등 일반 성병 및 에이즈 감염도 일반 계층보다 훨씬 빠르게 번지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는 “국내 에이즈 감염자는 2002년 3만2,876명에서 2006년 1만2,824명까지 하락했으나, 같은 기간 65세 이상 에이즈 감염자는 133명에서 203명으로 급증했다”며 “노인 등 취약 계층의 성병 치료를 위한 비용이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 계층이 선입견을 버리고 소수ㆍ소외 계층의 성적 권리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채규만 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제는 노년의 성을 인정하고 건전한 성 문화를 모색하는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인노동자인권센터의 한 관계자도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리는 강화해야 하지만, 범죄 예방 차원에서라도 그들의 성적 욕구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합법적 해소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노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성적 권리를 인정 받지 못하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잘못된 관행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정신지체 2급 장애인인 경복현(38)씨는 “일부 장애인 수용시설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불임수술이 비일비재하게 자행되고 있다”면서 “장애인은 장애인을 양산한다는 그릇된 인식 때문에 남성 또는 여성으로 살아갈 수 없도록 강요 받는 장애인들이 많다”며 관심과 대책을 호소했다.

허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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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정만 가라고? 우리도 사랑할 권리 있어"

1986년 이후 20년간의 인구통계학적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성’문제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사회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6년 65세 노인의 기대 여명(餘命)은 11.47년이고 65~69세 인구수도 31만명에 그쳤지만, 2006년 65세 노인의 기대여명은 16.08년으로 50% 증가했고 65~69세 인구도 78만명으로 늘었다.

서울 종로구 보건소가 최근 종묘공원을 자주 찾는 60세 이상 노인 2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하고 있다”고 답한 데서도 세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기 마련이다. 성을 즐길 수 있는 노인 계층의 급팽창은 노인이 많이 몰리는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종묘공원 일대 상권 변화에 그대로 투영됐다.

2000년 이전 ‘박카스 아줌마’로 대변되던 ‘노인 성’의 분출구는 콜라텍, 노인 전용 술집 등과 같은 곳으로 그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낮 12시가 지나자 공원 입구 주변에 50~60대 여성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짙은 화장에 몸매를 드러낸 옷차림의 이들은 암암리에 노인 대상으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아줌마들. 한 여성이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70대 할아버지 옆 자리에 앉더니, 잠시 뒤 함께 인근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한 박카스 아줌마는 “수저를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찾는 게 남자다. 우리가 아니면 1만원 받고 노인들의 욕구를 누가 풀어주겠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인들이 박카스 아줌마만으로 성적 욕구를 풀기엔 한계가 있다. 하루에 2만원 가량의 용돈을 쓸 정도로 여유가 생긴 노인들은 2년 전부터 공원 인근에 하나 둘씩 생긴 콜라텍으로 옮겨갔다. 그 바람에 박카스 아줌마들의 숫자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게 인근 노점상의 전언이다.

실제 지난 10일 종로의 한 극장 인근 노인 전용 콜라텍에서는 정장 차림의 할아버지 할머니 100여명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곳에서 노인들은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20대 젊은이처럼 자유연애와 이성교제를 할 수 있다.

콜라텍 업소 관계자는 “이곳에서 춤을 추다가 연인이 되는 노인들이 많다”며 “좀 더 적극적인 분들은 여기서 처음 만난 이성과 여관을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 이날 저녁 콜라텍을 나온 한 60대 후반의 커플 한쌍이 골목 안쪽의 여관으로 발길을 옮기는 장면이 목격됐다.

노인 성과 관련된 업태가 예전보다 다양화하긴 했지만, 성에 대한 노인들의 불만은 더 높아지고 있다. 70년대 유행한 팝송이 흘러나오는 낙원상가 인근 생맥주집에서 만난 김모(75)씨는 “가끔 옆 자리에 앉은 이성들과 단체로 미팅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본다”면서 “노인들에게도 성욕이 있고 사랑할 권리가 있는데 노인들의 연애를 나쁘게만 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당하게 성을 즐기는 노인이 늘면서 예전에는 볼 수 없던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성병으로 남몰래 고통받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고, 특히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발기부전 치료제를 잘못 먹어 낭패를 보는 노인도 많다.

종로에서 개업한 한 비뇨기과 의사는 “노인 성병 환자가 추세적으로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일대 좌판에서 판매되는 조잡한 중국제 비아그라의 피해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3년에 노인이 성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건수는 1만9,000건이었으나, 2006년에는 2만3,000여건으로 늘었다. 한 관계자는 “노인의 경우 콘돔 사용률이 채 10%도 되지 않기 때문에, 성생활이 활발해지면서 환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건강 관리를 잘 한 덕분에 젊은이 못지 않은 체력을 갖고 있는 노인들이 늘면서 노인 관련 성범죄가 최근 급증하는 것도 새로운 문제”라며 “노인 성 문제를 다룰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김청환기자 chk@hk.co.kr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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