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6개 지방경찰청 가운데 살인사건 수사를 가장 잘하는 곳은 어딜까. 검거율만 보면 대구경찰청이다. 그러나 수치를 살펴보면 뭔가 이상하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대구에서발생한 살인사건은 120건인데, 대구경찰청은 121건을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이 거액의 ‘혈세’를 들여 구축해 2004년부터 운영 중인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애매한 작성 기준과 일선 경찰관의 왜곡된 자료 입력으로 CIMS는 객관적 통계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물론, 오히려 경찰의 공조수사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주요 사건 검거율 부풀리기에 이용되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한남대 권세혁 교수 연구팀이 경찰청 의뢰로 지난해 5월~12월 조사해 최근 경찰청에 제출한 ‘경찰통계정보의 체계적 관리방안 연구’결과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13일 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의 중요 수사과정 중 하나가 영장 신청인데도 일선 경찰관들은 실제 영장신청 건수의 50% 정도만 CIMS에 입력하고 있으며, 사건 접수후 해결하지 못한 미제사건 대부분은 아예 입력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양 초등생 납치ㆍ살해사건 수사 당시 범인 정모(39)씨가 범행후 4개월이 넘도록 검거되지 않은 것은 미제사건 정보가 전산망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경찰이 자기 입맛에 맞게 사실과 다른 내용을 입력하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A경찰서의 지난해 7월 일주일 동안 CIMS에 입력한 사건 100건과 실제 사건 조서를 비교한 결과, 단 한 건도 조서 내용과 CIMS 입력 내용이 일치하지 않았다. 대구경찰청처럼 발생 살인 사건보다 더 많은 사건을 해결, 검거율이 100%가 넘는 황당한 통계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조차 부실한 CIMS 통계를 믿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살자 통계다. 매년 CIMS에 입력되는 연간 자살자 수는 1만명 수준. 그러나 경찰청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일선 경찰에 공문을 보내 자료를 수집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반복하고 있다.
경찰이 수작업으로 집계해 국회에 보고한 연간 자살자 수는 1만5,000명으로 CIMS와 5,000명이나 차이가 난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경찰 부실 통계의 원인은 하드웨어가 아니다”라며 “사건이 접수되면 무조건 입력하고, 경찰관이 자의적으로 입력 내용을 바꾸지 못하도록 명확한 관련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범죄정보관리시스템(CIMS)
경찰이 범죄 사건 발생시 발생 시간 및 장소, 범죄 내용, 관련 법령 등 사건과 관계된 주요 내용을 기재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경찰 자체 전사시스템이다. 범죄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건의 기본적인 내용과 함께 특이사항까지 기재한다. 2004년부터 일선 경찰에 도입됐으며, 사건이 발생하면 담당 경찰관은 사건 내용을 CIMS에 반드시 입력해야 한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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