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스미스 지음ㆍ박상은 옮김/문학동네 발행ㆍ196쪽ㆍ9,500원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인기 소설가 알리 스미스(46)의 2007년 최신작이자 국내 첫 번역작이다. 1995년 단편집 <자유 연애(free love)> 로 데뷔한 작가는 장편 <호텔 월드(hotel world)> (2001)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05년 장편 <사고(the accidental)> 로 휘트브레드상을 받는 등 평단과 시장에서 두루 탄탄한 입지를 다져왔다. 사고(the> 호텔> 자유>
소설은 두 자매, 이모겐과 앤시아의 이야기다. 둘은 미국 생수 판매회사 ‘퓨어’의 스코틀랜드 지점에서 일한다. 반듯한 삶을 추구하는 언니와 달리, 동생 앤시아는 직장 생활에 얽매이길 거부한다. 어느날 그녀는 퓨어사(社) 간판에 “물은 인간의 기본권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물을 판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그래피티를 남기고 유유히 내려온 여자 로빈과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내가 이제껏 보아온 중에 가장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동생의 동성애에 노심초사하던 이모겐은 회사 고위 임원에게 승진과 연계된 부도덕한 제안을 받는다.
연인이자 동지가 된 로빈-앤시아는 건물 외벽에 여아 살해(“매해 200만 명의 여아가 출산 때 혹은 그 이전에 죽임을 당한다”), 여성 임금 차별(“여성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도 30~40% 적은 보수를 받는다”) 등의 상황을 폭로하는 그래피티 작업을 하면서 ‘이피스와 이안테’라는 서명을 남긴다.
남장 여자 이피스가 여신들의 도움으로 남자의 몸으로 거듭나 아내 이안테를 맞게 된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속 신화의 페미니즘적 패러디다. 중성적 외모의 로빈(이피스)은 스스로 그/그녀의 경계를 무화하고, 앤시아(이안테)와의 사랑을 통해 이성애 중심주의를 무너뜨린다(작가도 동성애자다). 변신이야기>
한편 회사의 제안을 단호히 뿌리친 이모겐은 사내 남자 동료에게 그간 억눌러왔던 사랑을 표현하고, 동생 커플과의 적극적 연대를 결심한다. 자연(물)마저 상품(생수)으로 전유하려 드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거부하는 일이 곧 여성 해방으로 통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소설의 다섯 개 장은 앤시아와 이모겐의 시점으로 번갈아 쓰여졌다. 앤시아의 장은 대화 위주로, 이모겐의 장은 독백 위주로 진행되면서 둘의 대조된 성향, 해방과 억압을 형식적으로 구현한다.
작품 첫 머리에 여성 선거권 허용-영국에선 1928년에야 부여됐다-을 주장하며 골프장 잔디에 구호를 적었던 두 자매의 할아버지 회고담을 배치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신화 속 이피스가 할아버지와 두 자매를 통해 현현하면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넓혀가는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는 작가의 역사관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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