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까지 해주소."
"다 끝난 게 아닌데…. 형이 살아야 야당이 삽니다."
서울 동작을에서 낙마한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선거 직후 서울에서 드물게 살아남은 통합민주당 최규식 의원(강북을)에게 축하전화를 걸었을 때 나눈 얘기다. 고교(전주고) 1년 후배인 최 의원은 마음 아픈 위로를 했고 정 전 장관은 허전한 격려를 했다.
서울 구로을에서 살아남은 박영선 의원은 11일 오전 정 전 장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낙선사례 하러 다니다가 잠깐 차에서 졸고 있다"는 비서의 얘기를 듣고 이내 통화를 포기했다. 정동영계는 이처럼 침울해 있다.
측근들이 가슴 아파하는 동안 정 전 장관은 여전히 동작구 사당동 일대를 돌며 낙선인사를 하고 있다. 열성 지지자들의 눈물 섞인 위로를 받을 땐 그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12년 전 정치에 입문, 질풍노도의 기세를 보였던 그이기에 대선 참패에 이은 지역구 낙마는 생각보다 충격이 크다. 주변엔 "마지막이 아니냐"는 서늘한 우려마저 있다.
이제 정 전 장관은 지난 12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앞으로 갈 길을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머지 않아 해외로 나가 연구활동에 전념할 예정이다. 그의 정치적 방학이 얼마나 될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지금이다.
민주당의 또 다른 축이었던 김근태 전 의장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당선됐다면 그의 역할은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근소한 차이의 패배가 주변을 더욱 아쉽게 하고 있다.
김 전 의장은 일단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 한 측근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했고, 다른 참모는 "일단 쉬면서 대안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 대선주자 경선을 포기했고 당권에 대한 미련마저 버렸기에 낙선은 '김근태'라는 이름 석자가 희미해지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건강도 썩 좋지 않다.
장영달 이호웅 우원식 이인영 의원 등 재야파 동지들도 낙선했다. 외로운 때다. 그러나 김 전 의장은 조만간 친목 지지모임인 '파랑새 조기축구단'에 나가 축구를 다시 할 생각인 모양이다. 그게 그의 또 다른 시작일 것 같다.
박관규 기자 qoo7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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