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유근이가 그냥 초등학교에 다니도록 놔둘 걸 그랬나 봅니다.”
작년 4월 필자가 송유근 군의 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들은 푸념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부모의 표정에는 아들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두 분은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도 유근이의 방송 출연을 철저하게 가리는 등 너무도 점잖게 처신하고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오로지 유근이가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고민일 뿐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과정까지 수학, 물리학, 천문학의 핵심 개념을 21강좌로 정리한 필자의 저서를 유근이에게 줬다. 그런데 거의 팔리지 않는 그 책을 유독 유근이만은 표지가 다 헐도록 읽어댔다. 이에 감복한 필자는 유근이를 직접 가르쳐 보기로 마음 먹었고 현재 9강좌를 끝냈다. 이를 위해 유근이는 작년 대전에 10번이나 내려왔다. 가르쳐 보니 유근이는 정말 천재요 우리나라의 ‘보장자산’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유근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벌써부터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논문 생산과 연구비 수주 때문에 쉴 틈 없는 연구원이나 교수들 사이에서 유근이는 ‘뜨거운 감자’처럼 돼버린 것 같다. 오죽하면 현직 기관장인 필자가 나섰을까. 필자는 일단 유근이가 한국의 빌 게이츠가 되든 스티븐 호킹이 되든 꼭 필요한 기초 부분을 가르쳐 주려고 한다.
문제의 핵심은 유근이가 아이(1997년 생)라는 점이다. 좋아하는 분야는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고 공부가 싫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도 아직 다 이해 못한 유근이가 양자 컴퓨터를 이야기할 때 필자는 얼마나 가슴이 철렁한지 모른다. 누군가 체계적으로 기초부터 책임지고 가르쳐야 할 텐데 걱정이다. 동네마다 영재학원이 넘쳐나는 나라에서 진정한 영재가 거의 방치돼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유근이가 선진국으로 유학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 과거에 실패한 천재들을 떠올리며 그런 충고들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외국의 누가 유근이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친절하고 쉽게 기초과정 교육을 할 것이며, 유근이가 단조로운 유학생활을 견뎌낸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우리 과학기술계 수준도 이제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 줬으면 한다.
현재로서는 유근이가 영어 공부를 병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를 최대한 빨리 취득하고 다양한 분야의 연수를 외국에서 받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유근이 나이나 유근이네 형편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이세경 총장과 기초기술연구회 유희열 이사장 같은 분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유근이네를 면담한 바 있어 길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유근이가 실패하면 이는 곧 우리나라의 손실이요 교육계와 과학계의 망신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유근이는 필자가 운영하는 5인조 밴드 ‘닥터 블랙홀 & 프렌즈’에서 객원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다. 공부만 잘하면 뭐하냐며 필자가 강권하기도 했지만 일단 본인이 무척 좋아한다. 드럼을 치는 유근이의 행복한 모습을 보려면 이번 토요일인 4월 19일 오후 3시까지 ‘꿈돌이 사이언스 페스티벌’의 ‘대한민국 SF 컨벤션’이 열리는 대전 꿈돌이랜드 여왕무대로 오면 된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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