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러 브래드퍼드 지음ㆍ김한영 옮김/사이 발행ㆍ688쪽ㆍ2만6,000원
체사레 보르자(1475~1507). 교황 알렉산드르 6세가 즉위하기 전 유부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로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를 위협하면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꿈꿨던 중부 이탈리아의 지배자였다. 강인하고 섬세한 이목구비, 검은 눈과 신중한 눈빛 등 출중한 용모와 함께 한번 명예를 훼손당하면 절대로 잊지 않고 복수하는 카리스마를 과시했던 젊은 군주였다.
피렌체의 외교사절로 1502~1503년 체사레를 직접 옆에서 지켜봤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 에서 그를 ‘이상적인 군주’의 전형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후 500년 동안 ‘악의 본보기’로 낙인찍혔다. 그가 뒤집어 쓴 혐의만 해도 살해, 납치, 독살, 성직매매, 근친상간, 약탈, 반역 등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군주론>
영국의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그가 왜 그런 오명을 뒤집어썼을까를 파고들어간다. 그가 뒤집어쓰고 있는 악행들은 당대에 흔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암살은 일상적이었고 성적타락 역시 일반인이나 성직자에게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지은이는 그의 오명은 외국인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오랜 적대감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는 스페인 혈통이었는데, 당시 이탈리아의 대가문들은 종종 스페인 사람들을 ‘은밀한 유대인’이라는 뜻의 ‘마라노’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다.
또 한가지는 그가 품고 있었던 불 같은 야망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젊음, 뛰어난 외모, 언변과 프랑스와 스페인이라는 두 대국의 틈바구니에서 힘을 축적하는 정치적 수완을 가지고 있는 것에 더해 꺼지지 않는 야망을 감추지 않았다. 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경쟁자들에게 시기심을 야기했고 그가 오랫동안 ‘악마 같은 인물’ 비춰질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됐다.
책은 극적요소를 모두 갖춘, 짧지만 불꽃같았던 체사레 보르자의 인생을 추적하며, ‘영웅’과 ‘악마’라는 두 가진 면을 동시에 보여줬던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는데 힘쓴다.
저자는 “체사레 보르자는 ‘카이사르 아니면 무(無), 즉 황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인물”이라며 “무자비하고 도덕관념이 없고, 여러 면에서 영리한 정치 악당이었지만 자신의 운명을 성취하려는 집중된 추진력과 능력은 그에게 천재의 자질들을 부여했다”고 썼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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