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를 누리는 요리만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밝고, 명랑한 '캔디' 같은 캐릭터들로 그려진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주방 너머의 세계는 하루하루가 전쟁터이기에, 넘어져도 발딱 일어나는 '긍정의 힘'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일까? 궁금한 김에 각자 활동 영역이 다른 셰프 3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 어느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강한 의지와 긍정의 힘으로 각자의 요리 역사를 만들고 있는 이들과의 대화가 입맛을 제대로 돌게 할 것이니 준비하시라.
최수근 - 서울 하얏트호텔 3년, 신라호텔 17년 경력. 르 코르동 블루 파리 본교 출신 1세대. 현 경희대 조리과학과 부교수 재직 중. 윤화영 - 르 코르동 블루 파리, ESCF 졸업. 현 피에르 갸니에 셰프. 황선진 - 미국 존슨 앤 웨일즈 수학. 스페인 '엘 블리' 인턴 셰프 역임.
- 쟁쟁한 경력의 셰프들이 세대를 넘나들며 한 자리에 모인 것이 흥분되는군요. 특히 최수근 교수님은 '소스의 레전드'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서의 제목도 <소스의 비밀> 이죠? 소스의>
최= 나는 주특기가 소스, 특히 육수를 이용한 소스니까 늘 그것을 후배들에게 고스란히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지.
- 저 역시 르 코르동 블루 재학 시절, 한국에서 유학 온 셰프들이 하나같이 교수님 책을 교과서처럼 끼고 다니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럼 드시기 좋아하는 메뉴도 소스 음식인가요?
최= 소스의 기본이 육수라서 그런지, 나는 '탕'을 참 좋아해요. 설렁탕 같은 음식.
윤= 저는 제 앞에 고기 한 덩어리를 던져주면, 그걸 분해하고 익히는 과정을 가장 즐겨요. 양 한 마리나 송아지라면 손끝에서 놀 정도로 고기를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먹기 좋아하는 메뉴는 생선 요리에요. 특히 맛있는 백포도주와 어울리는 생선 요리요.
황= 저는 음식을 디자인하는 일이 제 요리의 시작이기 때문에 연필과 지우개, 종이가 제게 가장 우선하는 요리 재료라고 할 수 있어요. 음식을 디자인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 맞는 재료와 조리법을 선택하니까요. 좋아하는 음식은 청국장이나 자장면입니다.
- 셰프들의 일과는 매일같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쉽지 않은 여정일텐데요, 지친 나에게 휴식을 주는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윤= 저는 근무 중에는 단 한 끼도 먹지 않고, 귀가해서 밤 12시에 한 끼를 먹어요. 그 때 아내가 '홧 타이'(태국식 볶음국수)를 만들어주는데, 그걸 먹으면 정서적으로 릴랙스되는 것 같아요.
최= 우리 딸 둘이 다 요리사예요. 큰 딸은 양식, 작은 딸은 한식. 아이들이 나서서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릴 때가 있는데, 그 맛이 행복하지요.
황= 저는 여자 셰프로 외국에서 일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요. 여자라서 안 된다, 외국인이라서 안 된다는 타박을 맞을 때마다 초콜릿으로 만든 디저트를 말 그대로 '퍼' 먹어요.
- 최 교수님께서는 저희보다 한 세대를 앞서 계시고 윤 셰프는 프랑스 고급 요리의 중심에, 황 셰프는 아직은 우리 대중에게 생소한 '분자 요리'라는 분야의 중심에 있는데요, 각자 처한 상황에서 진단하는 요리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최= 우리 배울 때는 요리란 전통, 유행, 주관을 3박자로 하고 거기에 정성을 더하면 된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 가운데 유행의 비중이 커진 게 사실이죠. 최근 우리나라의 서양식이 퓨전–웰빙-로하스라는 키워드의 변화에 좌지우지되어 온 것만 봐도 요리사들에게는 참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윤= 프랑스에서는 1980~90년대의 누벨 뀌진(칼로리 높고 절차가 비실용적인 프랑스 요리의 현대화) 영향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새로운 식재료에 열광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아시아의 식재료, 예를 들면 팽이버섯 같은 것들에 모두들 '새로운 맛'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었지요.
요즘에는 젊은 프랑스 요리사들이 둘로 나뉩니다. 아예 더 트렌드를 좇는 이들과 다시 클래식으로 회귀하는 이들로요. 물론 최 선배님 시절의 클래식 요리에 비하면 '네오 클래식'이겠지만요. 어쨌든 팽이버섯의 예처럼 '식재료'가 부각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요.
- 그럼 요리의 트렌드 속에 소위 말하는 '뜨는 식재료'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요?
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산 아스파라거스가 kg당 35~40유로에 육박한답니다. 나오는 철이 짧게 한정되어 있고, 그 맛이 칠레나 페루 산보다 월등히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죠.
황= 제가 일했던 스페인 최고의 레스토랑이라는 '엘 블리'의 경우에도 사정은 같아요. 순수하게 재배된, 맛이 오리지널한 농산물 확보에 모두들 눈에 불을 켜죠. 식재료 확보를 위해 헤드 셰프가 직접 비행기를 타고 공수해 올 정도로 열성입니다.
최= 결국 제한된 테크닉과 레시피 안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것은 재료이기 때문에 질 좋은 식재료, 특히 순 자연산 농산물의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지.
- 그럼, 음식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渶炤?대한 고민이 우선이겠군요?
윤= 농업고등학교의 육성 등을 통해 농산물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시급합니다. 좀더 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거죠.
최= 결국 우리 식재료 개발이 앞으로 한국 셰프들의 나아갈 길이에요. 옛날 임금님 진상품이었던 식재료들을 보세요. 예를 들면 송화가루로 만든 디저트를 서양인들이 먹었을 때 그 반응이 엄청나거든.
황= 맞아요. 스페인의 분자요리 대가들이 한국의 당면이나 김 등을 일일이 분석하는 것을 보고 저도 놀랐거든요. 우리는 매일 보는, 흔하게 여기는 식재료들이잖아요.
- 결국 '명품 식재료'가 앞으로 요리 트렌드를 지배하겠군요. 이야기를 좀 돌려볼게요. 주량은 각자 얼마나 되시나요?(웃음)
윤= 음식을 하기 전에는 꽤 마셨었지만, 요리사가 되고 나서는 마실 시간이 없네요. 글쎄요, 소주 반 병?
최= 난 한 잔. 아주 마음 먹고 마시면 반 병 정도지만, 독주는 거의 안 마셔요. 미각을 해치니까.
황= 저도 와인 한 잔 정도 마실 뿐이에요. 매운 음식도 즐기지 않고요.
- 와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전세계적으로 레스토랑 비즈니스에 있어 와인이 화두지요?
윤= 그렇기는 하지만 와인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프랑스의 유명 식당에서 소믈리에를 하고 있는 친구와 장어덮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친구가 가장 값이 싸고 타닌이 많은 레드 와인에 얼음을 넣어 달라고 주문하더군요. 자기 입맛에 와인을 맞춰가며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 와인도 좋지만, 우리 전통주가 와인에 뒤지는 않는데도 손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최= 아무래도 그 내용물은 훌륭한데, 포장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있어요. 외국 셰프들이 소스를 연구할 때 우리 쓰는 간장 같은 것에 상당히 열중을 하거든. 전통주가 더 알려진다면 와인보다 못 할 것 없지요.
-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요리의 승패는 재료가 결정하고, 특히 우리 것을 더 개발하고 알려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명제만 남는군요.
최= 저는 현재 '에스코피에'라는 요리연구회를 갖고 있어요. 그것을 기초로 음식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인데, 그 꿈의 저변에는 요리에 관한 '기본'을 바로 세워보고 싶은 뜻이 있지요.
윤= 저는 하루 빨리 제 이름을 건 음식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갸니에르와 같은 스타 셰프들에게 분명 배우는 것이 있겠지만요. 그와 함께 전통주의 패키지가 모던해진다든지, 한국 농산물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황= 저는 가장 한국적인 음식의 요소를 제 디자인을 통해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저의 디자인에 매료되어 맛보는 요리가 한국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면 멋진 일이겠지요. 결국 그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니까요.
박재은ㆍ음식에세이 <밥 시> 저자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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