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9 총선이 많은 화제를 낳았지만, 한 표 한 표 쌓인 민의가 필요한 곳을 정확하고 날카롭게 긁고 찔렀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놀라움을 안겼다. 전국 단위 선거사상 최저의 투표율이 일부 민의가 비틀린 결과를 가져오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전체적으로는 최소한의 균형을 확보해 냈다.
우선 여당인 한나라당에 과반수가 약간 넘는 의석을 주어 지난해 대선에서 이룬 정권교체가 정책변화를 통해 의미를 갖는 데 필요한 정치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다짐해 온 ‘실용주의 개혁’에 힘을 실어, 경제 되살리기가 국가적 당면과제임을 확인하는 한편으로 급속한 정책노선의 변화나 무리한 정책 추진에는 분명한 한계를 설정한 셈이다.
또 통합민주당에 대해서는 지난 정권의 정책실패를 심판하는 연장선상에서 한번 더 채찍질을 했다.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견제 역할에 필요한 존립기반은 만들어 주었다. 지난날의 잘못을 더욱 더 반성하고, 정확한 곳을 잡아 견제역할을 하되 더 이상 떼쓰기 식의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표의 무서움이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여당 내 ‘친이 세력’ 주요 인사들의 낙선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의 낙선은 당사자에게는 물론 여당과 ‘범여권’, 나아가 정치권 전체에 던진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경고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이후 최근의 총선 공천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박근혜 옥죄기’의 선두에 섰다는 이미지가 뚜렷하다.
그것이 당내 ‘친박 세력’의 반발과 그에 따른 당내 갈등을 불렀다. 더욱이 국민의 눈에는 이들의 ‘옥죄기’가 겉으로 내세운 명분과는 달리 당내 권력투쟁의 최대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욕심의 발현으로 비쳤다. 이들의 낙선이 단순히 ‘친박’ 성향 유권자들의 ‘보복 투표’로는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돌출과 과욕에 대한 유권자 일반의 심판이라고 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해서도 박수만 보낸 것은 아니다. 당내에서 30여 석, ‘친박연대’ 및 친박 무소속연대에서 약 25석 등 지난해 경선 당시와 비슷한 세력을 확보했지만 한나라당의 세력 확대를 감안하면 전폭적 지지와는 거리가 있다. 경선 승복 등 지금까지는 큰 과오가 없었지만 앞으로 좀더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에 강력한 지역기반을 확보하고도 교섭단체 구성에 미달한 것도 나름대로의 정치적 역할은 인정하되, 지역정당의 분명한 한계를 지적한 것이라고 볼 만하다.
크게 보아 보수와 진보세력을 2대 1로 가름으로써 드러낸 총체적 보수화 경향조차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진보진영의 일정한 가치는 인정하지만, 1대 1의 팽팽한 대결이 빚게 마련인 이념ㆍ노선 싸움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라는 준엄한 질책이다. 정권의 독주나 독선을 막을 책무를 진보세력에만 맡기기보다는 ‘범여권’ 내부의 견제와 균형에 우선 맡기자는 뜻도 담겼다.
정치권은 민의의 이 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여부는 ‘친박연대’를 비롯한 탈당파의 한나라당 복당 문제, 민주당의 지도체제 정비 문제 등을 배려와 겸손의 자세로 풀어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여야 모두 강퍅한 논리의 날을 세우기보다 협상과 대화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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