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 창비
흐드러지게 피었던 목련이 밤사이 빗줄기에 꽃잎을 떨궈버린 것을 보고 손택수(38)의 시집 <목련 전차> 가 떠올랐다. 읽다보니 표제작 말고도 요즘 계절과 꼭 맞아 떨어지는 시가 또 한 편 눈에 띈다. 목련>
‘해마다 봄이면 벚나무들이/ 이 땅의 실업률을 잠시/ 낮추어줍니다// 꽃에도 생계형으로 피는/ 꽃이 있어서/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서// 겨우내 직업소개소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벚나무 아래 노점을 차렸습니다/ 솜사탕 번데기 뻥튀기/ 벼라별 것들을 트럭에 다 옮겨싣고/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오르는 꽃들,// 보다 보다 못해 벚나무들이 나선 것입니다/ 벚나무들이 전국 체인망을 가동시킨 것입니다’(‘벚나무 실업률’ 전문).
이 시에서 벚꽃은 사람들이 ‘배곯는 소리를 잊지 못해’ 피는 꽃이다. 그 꽃그늘에 노점을 차린 우리 이웃들은 ‘여의도광장까지 하얗게 치밀어오르며’ 벚꽃과 하나가 된다. 같이 봄꽃 구경을 해도 이렇게 시인의 눈은 남다르다.
손택수는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당선 소식을 듣고 인터뷰하러 왔을 때 ‘시인’이 됐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던 10년 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교를 졸업하고 안마시술소 구두닦이로 일하며 맹인들에게 시를 읽어주다(<목련 전차> 에는 그때의 경험을 쓴 ‘추석달’이라는 가슴 찡한 시가 있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시인이 되기로 작정, 20세기 국내외 시집에 실린 시란 시는 거의 전부, 하루 100여편씩 읽고 습작하며, 각종 공모에 40번이나 응모했지만 탈락했었다고 했다. 지금 그는 참으로 빼어난 서정으로 우리 시단의 촉망을 받는 시인이다. 목련>
‘밭일 하시던 할아버지가 땅에/ 지겟작대기로 ‘ㄱ’/ 이라고 썼다/ 그리곤 크게 따라 읽으라고/ 침방울을 튀기며 ‘ㄱ’/ 온몸으로/ 외쳐보라고 하셨다/ 내 최초의 받아쓰기/…/ 허리 구부정한 ‘ㄱ’/ 지게를 지고 저녁연기 오르는 마을을 향하여/ 돌아오시던 할아버지/ 허리가 펴지지 않은 채 땅에 묻히셨다/ 기름진 자음이 되셨다’(‘자음’ 부분).
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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