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꼭 묻고 싶다. 일본은행 인사 문제다. 최선의 선택을 해서 청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부동의 됐다. 낙하산 인사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가. 적임자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를 대표에게서 듣고 싶다.”
9일 오후 3시10분께 일본 국회의사당 회의장. 3개월만에 열린 여야 당수 토론 자리에서 여당인 자민당 총재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마주 보고 앉은 제1야당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에게 이례적으로 정색을 하고 쏘아 붙였다. 정부의 일본은행 부총재 후보 임명동의안을 이날 오전 민주당이 다수인 참의원에서 부결시킨 데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총리의 갑작스런 질문에 어이가 없었던지 오자와 대표가 빙긋이 쓴 웃음을 지으며 받아 쳤다. “당수 토론은 야당 당수가 총리에게 질문 하는 자린 줄 알았는데, 모처럼 물어보니 답하겠다. 옛 대장성 출신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일은 총재, 부총재는 대장성 출신이 한다는 기득권이 아직도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대연립 구상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관계가 좋았던 후쿠다와 오자와는 이날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다. 야당 의원들 박수를 응원 삼아 일은 인사를 ‘낙하산’으로 비판하고 이 달부터 소멸된 휘발유세를 환원해서는 안 된다는 오자와 대표의 답변이 끝나자 후쿠다 총리는 더 기세등등해졌다. “일은 인사는 솔직히 말해 농락당한 것이다. 4명이나 부동의다. 이런 것을 두고 권력남용, 인사권 남용이라고 하는 거다.”
후쿠다 총리는 최근 취임 6개월만에 지지율이 절반도 안 되는 20%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 승리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낸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물러나게 한 오자와의 정권 교체 의욕에 계속 밀렸기 때문이다. 공무원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휘발유 세금을 줄여 국민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개혁ㆍ감세 전략이 약효가 있었다.
하지만 후쿠다 총리가 총재 공석 사태로 이어진 일은 인사를 하루빨리 마무리해야 한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드디어 오자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휘발유 세율 환원도 지방도로 건설 재원이라는 ‘대의명분’을 지론으로 내세워 공감을 얻고 있다.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민주당내에서도 오자와의 대정부 강경 노선을 비판하는 세력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재무성 출신 와타나베 히로시(渡邊博史) 일은 부총재 임명동의안은 참의원에서 6표 차로 부결됐다. 당론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이 3명, 결석ㆍ기권이 4명이었다. 전날까지도 민주당 내에서는 이번에는 통과시키자는 여론이 다수였지만 오자와 대표가 정략적으로 반대를 밀어붙였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오에 마사히로(大江康弘) 의원은 “민주당에 국정 운영을 맡겨도 되는지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대표를 던진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의원도 “실은 찬성표를 던지고 싶었다”며 “당내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오자와 대표가 “여론의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있다”며 불평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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