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9 총선 결과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13대 총선이후 집권 여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지만, 그것은 산술적 승리일 뿐 내용은 그렇지 않다. 당내 30여 석을 차지하고 있는 친박(親朴) 의원들이 ‘여당 속 야당’ 같은 존재로 남아 있고, 정점에 박근혜 전 대표가 서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총선 결과를 평하면서 “역시 국민이 정치보다 앞서가고 있다”며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겨야 한다는 점을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겸허한 자세로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자”는 다짐도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타협과 조정의 묘미를 발휘해 달라는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아슬아슬한 과반의석에 담겨진 민심을 읽어 겸손하고 신중한 국정운영을 하고, 복잡하게 얽힌 정국을 협치(協治)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피력으로 해석된다.
사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친이(親李) 세력만으로 정국을 주도하기가 어렵게 돼있다. 야당도 야당이지만 무엇보다 박 전 대표가 버티고 있어서다. 과거 대야관계가 정국운영의 핵심이었다면, 지금은 여당 내 화합이 발등의 불인 형국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 박 전 대표와 함께 가겠다는 뜻이 이 대통령의 언급에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또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만들기를 지지한 국민여론이 과반의석을 만들었다”면서 “선진국가라는 국가적 목표를 향해 가는데 국회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쉽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박 전 대표와의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복원하기 위한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 매개고리는 이 대통령이 “국민이 바라는 일 가운데 쉽게 할 수 있는 일부터 먼저 처리하라”고 비서진에게 당부한 대목이 시사한다. 박 전 대표가 경선 때 내세웠던 공약 중 이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규제완화와 세금인하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자연스럽게 화학적 융합을 시도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개표가 진행되던 9일 밤 과반의석 턱걸이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자 예정에 없이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찾았고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표를 안고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11일 청와대에서 강재섭 대표와 정례 회동을 갖고 저녁에는 당 지도부 및 중진들과 만찬 회동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청와대는 금명간 단행될 당직 인선 등에서도 박 전 대표측을 배려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민감한 현안인 탈당 인사들의 복당 문제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인 듯 하다. 물론 박 전 대표가 반대하고 있는 대운하 사업은 당분간 논의 자체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터넷한국일보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인터넷한국일보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