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 차량은 확성기를 아무리 크게 틀어도 처벌받지 않는다.’ ‘출마 후보와 운동원들은 애국가를 맘대로 바꿔 불러도 괜찮다.’
18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불합리한 선거 관련 규정을 바꿔달라는 요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빗발치고 있다. 현실을 무시한 규정 때문에 시민 불편이 가중돼 가뜩이나 낮은 투표율을 더 떨어뜨리고, 선거 비용 부담도 커졌다는 것이다.
10일 선관위에 따르면 민원이 가장 많은 것은 ‘소음제한 규정’의 도입. 소음진동규제법에 따라 선거운동원들은 주거지의 경우 낮(오전 7시~오후 6시)에는 80㏈, 야간(오후 10시~오전 5시)에는 60㏈을 초과하는 소음을 낼 수 없다. 그러나 유세차량 만큼은 예외다. 공직선거법은 ‘유세차량은 확성기 1대만 설치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확성기 한 대로 아무리 큰 소리를 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소음 때문에 선거운동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선거운동 방해 혐의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속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소음피해 신고가 빗발쳤지만 단속 규정이 없어 손을 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유세 로고송의 패러디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경기 분당시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애국가를 패러디해 로고송을 만든 후보도 있었다”며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애국가를 이용하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경직된 부재자 투표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부재자 신고서를 주민등록지 주민센터(구 동사무소)에 인편ㆍ우편으로 5일 내에 보내기가 촉박하고, 오전 10시~오후 4시인 부재자 투표시간도 너무 짧다는 것이다.
한 시민은 “부재자 신고를 인터넷으로 할 수 있게 하고, 투표시간도 연장하면 부재자 투표 비율이 높은 20~30대 투표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고시 시험장에서 잘못 기재된 OMR카드를 교환해주는 것처럼, 잘못 표기한 투표용지도 바꿔줘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잘못 기재한 투표용지는 폐기한 뒤 별도로 마련된 함에 넣으면 선거관리원이나 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채 비밀투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거를 마친 후보와 선거운동원들도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미혼인 한 후보는 명함 관련 규정을 문제 삼았다. ‘예비후보 기간에는 후보자와 배우자, 후보자가 지명하는 1인만 명함을 돌릴 수 있다’는 규정은 미혼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냥 3명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선거운동원의 셔츠는 같은 색으로 맞춰도 되지만 점퍼, 장갑, 목도리는 맞추지 못하게 한 것이나 당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착용하지 못하게 한 것도 후보들의 원성의 대상이다. 선관위는 동일한 차림의 운동원 여러 명이 세를 과시하지 못하게 하면서 단체주문에 따른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에 출마했던 한 후보 진영에서 선거사무장으로 일했던 이모(45) 씨는 “규정에 걸리지 않도록 단체복 주문시 색깔을 조금씩 다르게 염색해 줄 것을 부탁했고, 그 바람에 개별 염색에 따른 비용이 더 들었다”며 관련 규정이 편법을 조장하고 비용만 더 들게 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태무 기자 abcdefg@hk.co.kr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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