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3당 합당 이후 매번 총선 때면 시퍼렇기만 하던 부산의 당선자 지도가 이번엔 확 달라졌다. 부산에서 한나라당은 14대부터 당 이름만 바꿔가면서 총선을 거의 석권하다시피 했다. 역대 전적 70승2패. 14대에 무소속 서석재 의원, 17대 열린우리당 조경태 의원이 한 석씩을 가져갔을 뿐 나머지는 한나라당과 그 전신 정당들이 일방적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번에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지역구 18석 중 친 박근혜계 무소속 4석,친박연대 1석, 무소속 1석, 통합민주당 1석 등 무려 7석(38.8%)이 날아갔다.
박 전 대표의 고향인 대구ㆍ경북(TK)을 능가하는 친박 바람이 이곳에 불어 닥친 셈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어느 하나가 결정적 이유라기보다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게 지역 정가의 분석이다.
시발은 한나라당 공천 파동이었다. 공천 결과에 대한 부산 민심의 반발이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공천 직후 “부산 출신 거물들이 대거 잘려나가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대거 공천돼 이해할 수 없다”는 반발기류가 많았다는 게 현지 당직자들의 얘기다.
공천 파문의 후유증은 부산 민심에 내재돼있던 TK정권 탄생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결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부산에 한나라당 정서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모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선거운동 기간 나온 강재섭 대표의 “대구ㆍ경북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을 포함해 지난 15년 동안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는 발언이 불을 질렀다는 후문이다.
결국 문민정부 시절인 96년 15대 총선 당시 TK를 강타했던 반 PK, 반 신한국당 정서와 유사한 흐름이 거꾸로 부산에서 재연된 셈이다. 당시 대구 13개 선거구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단 2석만을 건질 수 있었다.
무소속 강자가 자리잡은 남구(김무성) 서구(유기준) 금정(김세연)의 트라이앵글에서 생성된 무소속 바람은 세 지역 사이에 끼인 연제 동래 수영의 판도도 흔들어 놓았다. 특히 세 지역의 경우 모두 구청장 출신 인사들이 무소속 후보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반 한나라당 정서와 결합했다. 인물론이 먹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신정부의 실세로 통하는 박형준(수영) 의원조차 그 바람을 감당하지 못했다.
부산 지역 한 인사는 “과거처럼 한나라당이 작대기만 꽂아도 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부산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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