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따진다는 것은 베스트셀러의 의미를 따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베스트셀러란 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 가치관이 늘 옹호할 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악스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상이 베스트셀러를 통해 읽히기도 한다.
집값 올려줄 만한 후보들 당선
이번 총선을 보는 심경도 비슷하다.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후보를 뽑는 국회의원 선거인데 마치 지역의회 의원을 뽑는 선거전과 비슷했다. 지역에 뉴타운을 가능케 하겠다는 한나라당 정몽준 후보는 그 발언에 날선 질문을 했던 기자를 희롱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되는 것을 보니 이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부동산을 통한 발복이었던가 싶다.
뉴타운이란 있던 동네를 까뭉개고 새로운 주거지를 개발하는 것이니 발상은 좋으나 실상 이뤄지는 양태는 그저 고만고만한 오래된 단독주택지를 부수고 아파트촌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찌 된 일인지 이 성냥갑같은, 똑같은 집들이 가격도 높이 쳐 줘서 뉴타운이 형성된다는 곳마다 집값이 크게 오른다. 올 들어 서울의 강남에서 주춤한 부동산 가격이 강북에서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모두 뉴타운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
과연 이것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가격 앙등인지, 부동산 투기꾼들을 위한 가격 앙등인지 짚어볼 겨를도 없이 무조건 집값만 오르면 된다는 낯뜨거운 욕망이 정몽준씨의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라면 정말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 동작을 뿐 아니라 전국에서 지역을 위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의 인기가 높은 것은 역시 성희롱 사건으로 이름을 날린 최연희 한나라당 의원이 다시 금배지를 단 데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번 총선이 투표 전의 예상과는 달리 한나라당이 절대 압승하지 않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후 그야말로 무례하다 할 정도로 친재벌, 친부유층 정책을 표방해왔다. 기업하기 좋게 하겠다는 이유로 기업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재벌로 하여금 금융업에도 손댈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 들어서는 상속세를 완화하겠다는 의견을 띄우는가 하면 신문과 방송 겸업을 허용하겠다는 분위기도 풍겼다. 모두가 승자독식의 체제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 정책들이다. 의료에서나 교육에서도 경쟁 일변도의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계속 밀어붙였다. 종합부동산세제 같은, 그나마 땅투기를 막게 만들어 놓은 제도마저 무효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일 정도였다.
이 기세대로라면 국민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운하마저 파는 것이 아닌가 싶게 집권 여당의 행태는 막무가내에 가까웠다. 비록 공식적인 공약에서는 내세우지 않았지만 정부 내에서는 준비작업도 하고 있었고 몇 개 부처 장관들은 서슴없이 운하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사실 행정부가 시도하고 의회가 반대하지 않는다면 여당의 행동을 막을 수단은 없다. 투표율이 낮아서 전체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은 의회니 뭐니 해도 일단 대표로 뽑힌 이들이 지지하고 나선다면 손을 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당이여 신중하라”는 메시지
다행히도 국민들의 선택은 여당이 신중하라는 것이다. 대운하에 반대한 문국현 후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하면서까지 지원해준 이재오 후보를 물리치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물론 이번 총선 결과에서도 보수색은 짙다. 일부 당선자들은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입당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한나라당과 호각세인 정당의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은 표를 몰아 주었다.
그것은 한나라당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개발일변도, 재벌일변도, 경쟁일변도의 정책에는 반대한다는 민의이다. 이 뜻을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읽어야 할 것이다.
서화숙 편집의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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