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9 총선의 민심은 보수를 선택하되 새 정부의 집권세력에 제한적인 경고를 한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물론 한나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친여 성향의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보수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낙선하고 당선되더라도 고전했으며 전체 의석도 당초 예상됐던 절대과반 의석에 부족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530만 표라는 역대 최대 표차로 당선됐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3개월여 만에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했다는 분석도 가능해진다. 외형상으로는 한나라당이 과반을 확보, 정국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도로 비쳐진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 박근혜 세력이 30석 가까이 당선됐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다수이면서도 친박의 협력을 받지 않고는 다수의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 된 것이다.
이념적 좌표를 놓고 보면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커진 보수적 가치가 커졌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그 비중이 줄지 않았다. 20, 30대가 선거를 외면하고 보수적 성향이 강한 50대 이상 장ㆍ노년층이 투표 결과에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수적 가치가 절차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국회는 여야 균형구도에서 보수의 우위구도가 됐다.
30대 이하 젊은층의 선거 외면은 자신들의 미래를 선(先)세대의 정치적 판단에 내맡기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도 심사숙고를 해야 할 대목이다. 진보나 보수 같은 이념적 잣대로 재단하기 어려운 이들 세대가 앞으로도 선거라는 기제를 계속 외면할 경우 사회 전반의 보수화는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승부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 지역구의 45%(245석 중 111석)를 차지하는 수도권 민심이 승패를 갈랐다고 볼 수 있다. 투표일 직전까지도 치열한 난타전을 벌였던 수도권 접전지의 상당수가 한나라당 후보들의 승리로 돌아갔다. 2006년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박빙의 승부가 벌어졌거나 최소한의 여야 균형을 유지해왔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의 ‘안정론’과 통합민주당 등 야당의 ‘견제론’이 팽팽하게 맞섰던 만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은 착시현상이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강남권은 물론이고 민주당이 강세를 보여왔던 강북지역에서도 표심의 변화가 뚜렷했다. 2006년 이후 수도권 전체가 한 덩어리로 표심을 드러내는 ‘수도권 지역주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17대 총선에서 약화하는 듯했던 지역주의는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 다시 맹위를 떨쳤다. 영남권에선 친여성향의 후보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어려웠고, 반대로 호남권에선 득표율 10%를 넘긴 한나라당 후보가 거의 없었다. 전형적인 여동야서(與東野西) 상황이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의 서진(西進)정책도, 민주당의 전국정당화 노력도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충청권에서 자유선진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은 것도 사실상 정치권의 지역주의 부추기기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이 충청에서 몰표를 받았을 때와 과정이 비슷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당 지도부 모두가 현지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쏟아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퇴행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양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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