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시장적인 것이 시장적인 것으로 위장해, 오히려 시장적인 것을 공격할 때 안타까웠습니다” 2006년 임기를 마쳤던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이임사에서 밝힌 말이다. 8일 김원준 공정위 사무처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강 전 위원장의 말이 새삼 떠 올랐다.
김 처장은 지난 달 임명되자마자 일부 언론의‘공격’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김 처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의 승진자체를 비난했다. 신문사들의 무가지 제공과 자전거, 선풍기, 토스트기 등 경품제공 사례들을 적발해 제재했다는 것이 비난 이유다. 그의 제재근거는 물론 관련 법규였다. 공정위의 역할 자체를‘반(反)시장적’이라고 공격한 사설의 시각을 여기서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새 정부 들어 균형감각을 상실한 이런 공격이 늘고 있고, 공정위가 고유의 역할마저 안 할수록 더 칭찬을 받는 듯한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도, 경제부처도, 기업도, 일부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공정위 사람들은 요즘 “척박하다”는 말로 자신들의 심경을 말한다.
김 처장의 사의를 백용호 공정위장은 적극 말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법이 부여한 기능까지 비난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는 조직의 무력감은 개인적 배려차원에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리에 연연하겠는가. 나라도(내가 김처장이었더라도) 사의를 밝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는 등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요즘 과거와 다른 방향의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데 후에 후유증이라도 생기면 해당 공무원들이 똑 같은 비난대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김 처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사의표명 이메일은 그래서 절절하다.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시장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을 역사는 높게 평가해 주리라 믿습니다”는 요지다. 기댈 곳이 없어, 역사에 기대야 하는 공정위의 모습이다.
이진희 경제부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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