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 문제를 풀기 위해 북한과 미국의 수석대표들이 8일 싱가포르에서 막바지 절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6자회담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북미 간에 입장차가 엄존하고 정세 판단 등에 따라 수개월 또는 수년씩 장기 지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한을 3개월이나 넘어선 핵 신고 장애를 어렵사리 넘어서더라도 3단계 조치인 핵 폐기 협상은 ‘산 넘어 산’인 형국이어서 6자회담이 언제 종점에 다다를지 누구도 점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선 핵 폐기 협상의 1차 관문으로 검증 문제가 딱 걸려 있다. 북측이 신고한 핵 시설과 생산 핵 물질, 우라늄농축프로그램 개발 의혹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또는 6자 당사국 기술팀의 현지 특별사찰이 수반돼야 한다.
문제는 북측 군부의 거부 반응이다. 1994년 제네바 핵 동결 합의 당시에도 북측 군부는 “군사시설에 대한 사찰은 용납할 수 없다”는 특별 담화까지 낼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미측 협상단은 북측 외무성과 군부의 콤비 플레이에 말려 경수로 건설 공정과 연계해 핵 사찰 시기를 연기하는 양보를 했고, 결국 북한 핵에 대한 사찰은 2002년 제네바 합의 파탄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북측이 3단계 핵 폐기협상에서 순순히 사찰을 수용하고 검증을 받을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나아가 북측이 검증에 대한 상응조치로 어떤 ‘선물’을 요구할 것이냐도 협상의 진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의 본심이 드러날 핵무기 및 관련시설에 대한 핵 폐기협상의 전망은 더욱 혼미하다. 미측이 북측의 안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북미수교를 포함한 관계정상화 조치와 대규모 원조는 물론 안전 보장문서를 제시 하더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연 전략적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주변 정세의 불안정성을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온 북측 지도부가 주변국과의 화해, 개방 조치 등 전면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대북 전문가들이 많다. 그래서 북측은 경수로 제공문제를 걸어 핵 폐기합의를 한없이 지연시킬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다.
사실 북핵 협상은 북한 핵 폐기 과정을 담은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2005년 9ㆍ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수시로 빚어진 북핵 협상의 지연도 북측의 전략적 측면이 깔린 것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9ㆍ19 공동성명 채택과 비슷한 시기에 미국이 위폐 제조 등 불법행위를 이유로 취한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 북한자금 동결조치에 맞서 북측이 협상 거부에 들어가면서 1년3개월이나 개점휴업 상태를 면치 못했다.
이 과정에 북측은 핵 실험으로 위기를 고조시키는 벼랑 끝 전술로 BDA 북한자금 동결해제라는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고 2006년 12월 6자 회담에 복귀했다. 지난해 2월 6자 당사국은 영변 핵 시설 폐쇄와 신고ㆍ불능화 조치에 합의했지만 실제 이행은 무려 5개월이나 지난 7월부터 시작됐다. 북측은 미국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BDA자금 이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행동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핵 폐기협상단계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장애나 지연은 하찮게 보일 정도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황 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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