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다윗이 이기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강기갑(54) 민주노동당 후보가 9일 경남 사천 선거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실세인 한나라당 사무총장 이방호 후보를 182표의 근소한 차로 따돌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농민운동가인 강 당선자는 전국농민총연맹(전농)의 추천을 받아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그의 지역구 당선은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으로, 본인은 물론 민노당 관계자들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나온 9일 오후 9시 이후 강 당선자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이 폭주해 마비될 정도였다.
강 당선자는 “사천도 놀라고, 대한민국도 놀랐다. 온 국민이 감탄한 사천시민의 위대한 선택에 저 역시 벅찬 감동을 누를 길이 없다”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그는 “시민 여러분께서 주신 한 표 한 표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심판이자, 희망의 사천,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세상을 열라는 엄중한 주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어머니의 마음과 같이 지역민을 진정 보살필 줄 아는 ‘섬김의 정치’로 보답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강 당선자는 17대 국회에서 두루마기 차림과 저돌적인 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넥타이와 양복 대신 긴 수염에 흰 한복과 고무신을 착용하고 국회에 출석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2004년 이라크 파병반대 단식, 같은 해 쌀 개방협상 전면 재협상 촉구 단식, 지난해 1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국회 상정에 맞선 단식 농성 등을 통해 온몸으로 농민과 진보 진영의 입장을 대변했다.
하지만 강 당선자가 18대 총선에서 사천에 처음 출사표를 던지자 모든 사람들은 무모한 시도로 여겼다. 사천은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가 3선을 노리는 곳인데다,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한복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청바지와 남방셔츠, 등산화 차림으로 젊은 층을 파고 들었다. 또 틈만 나면 운동원들과 대중가요에 맞춰 ‘텔미’춤을 춰 ‘선거는 강기갑도 춤추게 한다’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강 당선자는 이 후보가 ‘공천 파동의 주역’으로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오만한 권력에 대한 사천시민의 심판론’으로 끈질기게 표심을 파고들며 ‘각본 없는 드라마’를 준비했다.
여기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사천에서 “공천 파동의 주역 이방호는 스스로 책임지고 물러나라”며 이 후보 낙선운동을 벌인 것도 큰 보탬이 됐다.
강 당선자는 “고난의 길을 걷더라도 한길을 갈 것이며 17대 때보다 더 서민 곁으로 다가서서 서민경제와 소외 계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민노당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과 갈라서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으나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남에서 ‘권영길-강기갑 동반 당선’을 일궈내며 당초 목표한 지역구 2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노동의 메카’로 불리는 울산의 5개 지역구에서는 민노당은 물론 진보신당마저 모두 쓴잔을 마셔 진보 진영의 부진함을 드러냈다.
사천=이동렬 기자 dylee@hk.co.kr정창효기자 ch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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