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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투표율

입력
2008.04.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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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대 총선 투표율은 1985년 12대 총선 때 84.6%를 기록한 이래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1988년 75.7%, 1992년 71.9%, 1996년 63.9%에 이어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57.2%로 추락했다. 탄핵 후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에서 60%로 반등했으나 하향세가 역전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리즈파르트가 분류한 36개 ‘민주주의 정착국’의 2차 대전 이후 평균 투표율 73%에 크게 못 미칠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평균 투표율 64%보다 낮다. 국가별 순위로는 90년대 70위권에서 100위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투표율이 국가 수준이나 민주주의 발전 정도를 그대로 나타내지는 않는다. 일본의 90년대 이후 총선 평균 투표율은 57%, 미국은 45%에 그친다. 이에 비해 캄보디아 앙골라 인도네시아 소말리아 우즈베키스탄 알바니아 몽골 르완다 등의 평균 투표율은 80%를 넘는다.

또 여러 연구를 통해 국가별 투표율 차이는 교육과 소득 수준, 나라크기 등과도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력과 ‘삶의 질’을 종합 평가하는 유엔의 '인간개발지수'(HDI)가 유일하게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별 유권자의 투표 참여 여부는 흔히 PB+D>C의 공식으로 설명한다. P는 개인의 투표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 B는 지지 후보와 정당이 이기면 돌아올 것 같은 이득, D는 사회적 의무 이행과 정파적 지지에서 얻는 만족감, C는 투표에 드는 시간 노력 비용을 말한다.

그런데 대체로 P는 미미하기 때문에 PB도 제로에 가깝다. D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 그러나 이런 변수 자체가 모호한 데다 선거제도와 정치체제가 상이한 것을 고려하면, 투표율을 유권자 의식 수준과 곧장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서유럽의 투표 참여율이 유난히 높은 것은 다당제 내각책임제 국가가 많은 것과 관련이 있다. 유권자들의 투표가 연정 구성 등 국정 방향을 좌우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중심제에 의회 다수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우리 정치에서 총선 투표율 하락은 자연스러운 추세로 볼 수도 있다.

특히 선거운동이 타락 양상을 보이고 TV 의존도가 높을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일반적 현상이다. 정치제도와 행태를 올바로 진단하기보다 습관처럼 ‘유권자 의식’을 외치는 것은 그래서 듣기 민망하다. 차라리 낮은 투표율은 때로 높은 만족도를 반영한다는 이론을 소개하는 게 나을 수 있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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